안규철-사물의 뒷모습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금 책의 표지를 들여다본다. 어느새 꼬질꼬질해진 표지를 보고 있자면 내가 이 작고도 큰 세상을 얼마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지 알 수 있다.
안규철 작가는 내 마음속 깊은 곳 오랫동안 켜지지 않았던 횃불 하나에 불을 붙이듯, 그렇게 어쩌면 넋 놓고 흘러가는 내 삶을 일깨워주었다.
나름의 이유로 이번 방학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방학뿐이 아니라 확실히 혼자가 된 이제는 이라는 말이 옳다. 근 삼 년 동안 읽고 싶은 책만 왕창 사놓고 결국엔 내 이야기만 써 내려가기 바빴던 내가 이제는 SNS로 가득 채워진 이 표면적인 세상에서 멍하니, 쾌락적 욕구만으로 삶을 보내기는 싫었다. 조금 더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고 그게 나에겐 책이었다.
겨우내 식물들도 묵묵히 혹독한 시간들을 견뎌내는데 매 순간 공허라는 마음의 공간을 무언가로 채워내기 급급한 나의 조바심이 그들에겐 얼마나 가소롭게 보일까. 나는 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안달복달 세상을 살아가고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을까.
무언가를 소유하는 이루는 방법만 배우고 잃는 방법은 배우지 못한 우리는 다시 멈춰 또 다른 뒷모습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겨울만큼 혹독했던 장마가 이제는 지나갔을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안전 안내 문자가 이제는 그러려니 싶을 정도로 익숙해진다. 익숙해짐 속에서도 과거를 회상해 보면 현재의 삶이 너무도 어색해 좀 더 한 계절이 그 계절다웠던 세상을 떠올리면 한없이 아득해진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세상에 판을 친다. 한낮에 도심에서의 칼부림이 10분 만에 장맛비의 물이 불어나 가족을 잃는 일이 군대 보낸 외동아들의 부고를 듣는 일이 25세에 첫직장을 얻고 학부모의 짜투리같은 행동들에 생을 마감한 젊은 교사의 부고를 듣는 일 등, 이상해진 날씨만큼 이상해진 세상에서 우린 기억해야 할 것들을 꼭 기억하고 되새기며 사랑하는 것들을 이런저런 고민 없이 사랑해야 하며 진짜 나를 찾고 나의 뒷모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타인의 소리가 아닌 내게 집중하는 삶을 살 자격이 또 필요가 있다. 꼭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로서 살아갈 자격을 찾아야 한다. 0722
-일부 작가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