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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14. 2023

4. 보통의 사람들이 가까이 둬야 할 것

보통의 감상-김지연

반짝이는 어떤 것에서 김지연 작가에게 매료되어 열심히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보통의 감상'을 마주했다.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영화의 이야기로 시작해 일상의 이야기처럼 평범한 언어로 지금 한국의 현대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이유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내게도 현대미술은 항상 아리송하기 마련인데 그것들을 보통의 언어로 평범하게 야기한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현대 미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동시대인의 소리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아야 할지, 작품의 어떤 점을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매번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이런 이유는 꼭 맞는 해답을 찾아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으로부터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시대의 작가들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작은 틈을 포착해 작업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인마다의 다른 생의 기억들이 또 성격들이 그 틈의 깊이나 넓이를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편집하고 각색한 세상을 기준 삼아 다름을 느끼고 또 세상을 느낀다. 그것들이 가끔은 우리를 아프게도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그것들을 발견할수록 삶이 더 풍부하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지금 이 시대를 가장 가까이서 세세히 그려낸다. 그 세상에 대한 감상은 우리 곁의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시선의 끝에서 우리의 내면이 드러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그 틀에 맞춰지지 못한 우리를 길들여 우리의 행복할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눈을 또 뜨거운 가슴을 우리 스스로 가로막게 만들어 진정한 우리의 윤리나 소망을 스스로 가린 채 고작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괜찮다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보통의 누군가가 현대미술로부터 사회를 더 낱낱이 바라볼 수 있길, 갤러리나 미술관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위해 방문하는 목적이 아닌 나름의 언어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또 흥미를 느끼기 위해 영화관을 드나들 듯 쉽게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김지연 작가의 바람이 나에게만큼은 닿았다.


사소한 변화와 차가운 색이 가득한 이 현대에서 언뜻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조차 없는 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살아가고 있는 이 장소와 도시, 시대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혹은 아름답게 여기려면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물음표를 던졌고, 사실 처음부터 곁에 있었지만 새로운 시선이 없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존재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또, 우리는 별수 없이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외부 세계를 판단하기에 상대를 잘 알 것 같더라도 속단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남겨두는 게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도,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하고 담담한 한마디의 진심이라는 사실도,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여덟 글자로 그저 버티며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무엇보다 강한 투쟁이라는 사실도, 그냥 지나쳐버린 것만 같은 어딘가 구석에서 사소하게 남아 힘을 발하는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그게 '나'라는 사실도, 공원이라는 도시 속 쉼터가 사실은 드 넓은 자연에 나가 경험할 수 있는 행위를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도, 촘촘하게 통제되고 말끔하게 정리된 사회 속에서 진정한 나의 욕망을 해소하는 일이란 이렇게 모험적이라는 사실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와 또 다른 인간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생각을 김지연 작가의 보통의 언어들로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면 무언가로 내 가슴을 내 시선을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아주 윤리적이고 가슴 뛰는 것들인데 말이다.


인공지능 작가 '벤자민'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 '선스프링(2016)'은 흥미로운 시도로 화제가 되었지만 개연성이 부족하고 작가 특유의 목소리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실로 미루어보면 우리는 기술에게 우리의 할 일을 맡기며 미래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최첨단이라 여겨지는 그 기술을 이용하여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수준급의 그림을 그려내는 이 현대 앞에서 예술가가 지킬 수 있는 말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책의 끝 부분에 김지연 작가는 내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이 아직 인간 혹은 예술가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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