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2020
가슴속 꽃과 나무들이 시들어지곤 했다. 이리저리 치였고 어쩌면 나 자신이 이곳저곳에 부딪혔다. 하루에 세 번 하늘을 보면 행복한 삶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 것 같은데 하루에 한 번은커녕 고개를 들기도 바빴다. 4월의 LA는 아득했고, 12월의 북유럽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는 나날 속에 어느 날 갑자기 7일의 휴가가 생겨버렸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갑자기 생겨버린 휴가였고, 갑자기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군인 신분의 그는 별수 없이 나와 함께하지 못했다. 나 혼자 여행을 하는 걸 극으로 싫어하는 그를 생각해 앞전에 언급했던 여행 메이트와 여행을 함께해도 되냐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했지만 해외는 안된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여행이 가능하냐는 나의 질문에 바로 해외 이곳저곳을 줄줄이 말해 보이는 그녀였지만 그의 반대를 핑계 삼아 한국 일 주 중이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한국도 좋아! 언니랑 여행하면 어디든 다 좋지!’라는 기분 좋은 말을 해주었다. 이어 생각해둔 곳이 있냐는 그녀의 질문에 일 년 전쯤 그와 가려다가 가지 못했던 곳이 딱 떠올랐다. 그곳을 일 년 동안 가지 못했던 이유는 그와 스케줄이 안 맞기도 했지만 그곳은 서울, 경기와는 너무 멀어 1박 2일 또는 2박 3일로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물론 내가 여유로운 여행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 없이 넓은 바다를 볼 수 있고, 답답한 건물 숲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그곳 ‘거제’
많은 사람들은 통영과 거제가 바로 옆동네이기 때문에 두 곳을 묶어 한꺼번에 여행을 하곤 하지만 진득한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그는 거제도 나름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나중을 기약했고, 그를 만난 지 일 년 하고 반이 지난 지금 그 없이 누군가와 처음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것도 그와 함께하기로 기약했던 거제로.
휴가 7일 중 둘째 날까지 선역이 있던 나 때문에 우리는 결국 둘째 날 저녁이 돼서야 서울을 떠났다. 시간이 늦은 탓에 우리는 서울과 거제의 중간인 합천에서 하루를 쉬어가기로 했고 그 날이 넘어가는 새벽에 은하수와 별이 잘 보인다는 황매산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