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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기

08 May 2017

by 느림주의자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참 이상하다. 몸속 깊이까지 외로운 순간엔 멈춰있듯 시간이 안 가지만 멈췄으면 하는 순간엔 누군가 가져간 듯 시간이 사라진다.


어버이 날 때문은 아니지만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빠는 내게 그래서 언제 오는 거냐며 달력을 꺼내 들어 살펴보았다. 한 장 두장을 넘기던 아빠는 아직도 까마득히 멀었다며 너스레를 한참 떨며 우린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눈물이 흘렀다. 무언가가 그렇게 슬프지도 딱히 아빠가 보고 싶지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왜인지 알듯 모를 듯 이유는 그렇게 흩어졌다.

그리곤 일 년에 한 번뿐인 어버이날인데 같이 식사도 못하니 짧은 메시지 한통을 남겼다. 좋아하는 일이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인데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더 행복한 것 같다고,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줘서 감사하다며 끝엔 평소엔 잘하지 못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세일 중인 맥주를 집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짐을 던져놓고 맥주와 드로잉북을 들고 라운지로 나왔다. 나와 같은 일본 이름을 가진 아이상과 여행을 하며 팔이 많이 탔는데 섹시하지 않냐며 묻는 프랑스 친구,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어공부를 더 하고 싶다던 멕시코 친구, 오늘 내 하루는 이렇게 또 시끌벅적하게 마무리됐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여기저기서 모여 이곳에 만난 우리들은 다 함께 cheers를 외쳤다.

pm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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