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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06. 2020

제주도를 원하진 않았는데 퇴사는 고팠어요_1

일단 싫은 건 치웠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가는 그곳이니까 내가 원했던 곳이 아니었으니까.

더군다나 출발 날짜도 돌아올 날짜도 모두 정해져 있는 여행이었기에 그는 섭섭할지 몰라도 내게는 큰 감흥이 없었다. 비행기표를 사기 전까지는


코로나가 한참 전국에 퍼지고 있던 올해 여름, 무급휴가가 판치고 퇴사 권유가 판치던 그때에 나는 자진 퇴사를 했다. 하루하루 직장 내에서 괴롭던 순간들이 밤새 내 머릿속에 맴돌아 잠꼬대를 하며 겨우 든 잠에서 깨어났고 퇴근길도 출근길도 한숨으로 가득한 퇴사 직전의 나날들이었다.


_정말 곧 아니 어쩌면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았지만 퇴사를 마음먹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여기는 진짜 힘든 곳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입사 삼주 차였는데 말이다. 퇴사를 생각했던 건 입사 일 년 차 쯔음이었다. 어딜 가나 있는 생각이 안 맞는 사람과 어딜 가나 있는 나는 되지만 너는 안돼 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는 나를 상사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할 말은 다 하지만 큰 실수를 하지는 않는 직원. 뭐하나 걸려봐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도 그들은 뭐 하나 실수하면 눈에 레이저를 켜고 입에서 불이 나도록 나무라기 바빴다.

_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으나 나는 방치되고 있었다. 근무지를 변경하고 9개월 동안 이일 저일 핑계로 같은 업무를 해왔고, 나와 입사가 일 년이나 차이나는 직원은 벌써 내 밑을 바짝 쫒아오고 있었고 결국엔 같은 업무를 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상사들이 싫었지만 같은 섹션에 있는 친구들은 좋았고, 나는 참았고, 그래서 결국 나는 바보가 됐다. 내가 참지 않는다고 그 친구들이 피해를 받는 것도 내가 참는다고 그 친구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게 별로 없었을 텐데 말이다. 왜 나는 이렇게나 힘들었고, 왜 나는 이렇게나 마음에 정신에 상처를 받았을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까지 힘이 드는데 사랑했던 나의 과거를 후회하는 순간이 올 정도로 힘이 드는데 내가 아픈 게 내가 느껴지는데 그들은 왜 내게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던가,


정신과를 찾아보려 할 때쯤 몸에 병이 찾아왔고 난 결국 회사를 떠났다.

_사실 내가 퇴사를 하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남자 친구와의 약속도 있었다. 늦은 입대를 하게 된 그와 제대할 때까지 회사를 다니면 제대 날짜에 맞춰 내가 꿈에만 그리던 북유럽 일주를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지키기 쉽지 않은 약속이라는 걸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약 2년 동안 틈만 나면 퇴사하는 내 후임들을 보면서 정신이 나가 있는 나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줄을 잇는 그곳의 일들을 보면서 그는 일찌감치 내게

‘코로나 생겨서 북유럽도 못 갈 것 같고 너무 힘들면 그때까지 버티지 말고 그냥 그만둬요. 이미 충분히 버텼어. 코로나 사라지면 북유럽 가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보다도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내가 한심했을뿐더러 같은 상황에 더 높은 직급까지 더 오랜 기간 일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이만큼만 하고 그만두려 하는 나 자신이 작아졌고 창피하기도 해서 이를 악물고 버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성한 곳이 더는 없었고 나는 그렇게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때에 결국 자진퇴사를 했다.


일단 싫은 건 치웠으니 북유럽은 못가도 모든면에서 행복해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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