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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06. 2020

제주도를 원하진 않았는데 퇴사는 고팠어요_2

사실은 이럴 줄은 몰랐다_1

꿈에 그리던 퇴직을 했는데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퇴직금이 들어온 입금내역을 확인하고 적지 않게 놀랐다. 생각보다 훨씬 적은 돈이 들어왔고 내 머리는 하얗게 불타올랐다..


모아논 돈이 있지는 않았다. 고작 오백만 원 조금 안 되는 돈? 이십 대 후반인데 말이다. 21살에 휴학을 했고 워홀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여행에 바람이 들어 7년 동안 돈을 모으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떠났는데도 조금 더 아껴서 더 다닐껄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부모님 도움도 거절하고 다니던 나였기에 사실은 더 아낄 돈도 없었다. 그래서 북유럽도 2년 치 퇴직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가려고 했던 건데 1년 6개월치의 퇴직금은 상상 이상으로 적었고 이것저것 정산을 하니 남는 돈은 고작 삼십만 원 정도였다. 모든 것이 싫어서 그곳에서 나왔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북유럽 한 달 살기는 못해도 제주도 한 달 살기라도 하자는 그의 말에 나는 무조건 예스야 라는 말을 외쳤고 좀 쉬려나 했던 퇴직후의 나는 또 다른 일자리가 필요해져 버렸다.

_일단 나는 일을 할 수 있는 개월 수가 짧았고 발바닥이 심각하게 안 좋아진 터라 서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앉아서 하는 직업의 경력이 없었고 무모함만 있었다. 30 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고작 5 군데에서만 면접을 봤고 아무 곳에서도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내일 일을 가지 않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걱정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면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휘몰아쳐 내 가슴에 주먹질을 했다. 자책을 했고 꽤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줬던 것들에 대해서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자꾸만 후회가 됐고 사랑했고 좋아했고 자랑스러웠던 나의 과거가 이딴 상황 때문에 작아지고 후회됐고 바꾸고 싶기까지 했다.

_결국 앉아서 하는 일은 찾지 못했지만 예전에 일을 했던 빵집 사장님과 연이 닿아 서서하는 일이지만 몇시간 안되기에 일을 하기로 이야기를 했고 그러고나니 거짓말처럼 그날 밤 잠에서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래도 퇴사를 하면서 계획했던 것들이 있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기 전까지 내 시간이 많을 정도로만 알바를 하고 내게 좀 더 집중을 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싶었다. 제과제빵과 미술심리치료사. 이 둘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 딱 한 가지 연관이 있다면 그냥 내 관심사라는 것 정도? 평소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호주에서도 주방에서 조리를 배웠고 한국에서도 거의 매일 이 요리 저 요리 찾아서 해 먹었다. 또 음료 만들기도 좋아해서 카페 알바 경력도 다수 있었고 빵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옛날부터 내가 만들 빵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나면 일순위로 하려고 했던 공부였다.

그리고 미술심리치료사는 상처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상처를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래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힘들 때 아무도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줬던 때를 기억하며 또 막상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나를 기억하며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싶었고 미술심리치료사가 미술전공인 내가 상처를 들어줄 수 있는 또 그들이 쉽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이 연관관계를 가지고 나는 퇴사 뒤 공부를 결심했고 그 결심에 또 큰 시련이 올 거라는 생각은 미처하지 못했다.


빵집 사장님과 알바 이야기를 끝내고 제과제빵 책을 사고 미술심리치료사 공부를 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고 독서실을 끊을 때까지만 해도 아주 일사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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