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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30. 2020

제주도를 원하진 않았는데 퇴사는 고팠어요_3

사실은 이럴 줄은 몰랐다_2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더 별로였다. 자전거를 타고 나왔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서 앞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독서실에서 나와 근처 벤치에 앉아서 한참을 멍을 때렸다. 하늘만 이쁘면 기분이 괜찮아지던 나였는데, 무슨 일이 생겨도 모든 일에 위로가 될 수 있는 건 나에게 푸른 하늘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도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나는 그날 최악으로 치닫았고 최고로 별로였다.


알면 알수록 하고 싶은 공부들이었다. 특히 미술심리 공부 같은 경우 자격증 수업 하나를 듣고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비 오는 날의 나를 그릴 때의 결과물엔 내가 얼마나 많은 우울감을 가지고 있는지 주위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는지 나는 이 우울감을 이겨낼 용기가 있는지 아님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가 하면 나무 그림 하나를 거의 자화상처럼 해석해버릴 수도 있다. 한 장의 그림에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게 내게는 위로가 됐고 공감이 돼서 미술심리치료가 상처 받은 누군가와 마음이 지친 누군가와 대화보다는 쉬이 소통하고 상처에 대해 위로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_나는 옛날부터 자신에게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싶어 했다. 내 기억에 나는 밝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왔는데 상처를 감추려 강해 보이려 괜찮으려 노력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게 있는 흠집들을 합리화하며 항상 지워내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굳세어라 하니처럼 넘어져도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인 줄 알는데 내가 해온 그런 행동들은 내게 더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고 써 내려가는 글들로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내게 완벽한 방법을 찾아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았다. 알고 보니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알고 보니 나는 내 이야기로 인해 누군가가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서였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던 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게 상처 받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봐주며 '누군가 너의 꿈을 가로막는다면 나 하나쯤은 반드시 너의 편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 여권 속 카드처럼, 한마디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알수록 재밌고 알수록 궁금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시작하는 부지런한 빵집에서의 하루도 마음에 들었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 더더욱 좋았다. 알바가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푸른 하늘을 보면 이런 하루가 내게 오긴 했구나 싶은 설레는 마음으로 독서실로 갔다.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담아내고 하루의 마무리로 독서실 근처 헬스장에 가서 운동까지 하면 아주아주 완벽히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_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만족스러운 날들을 일주일쯤 보냈을까 강의도 많이 들었고 미술심리치료사 자격증 외에 어떤 것들을 취득하면 내게 좋을지 찾아보다가 미술심리치료사 자체가 민간자격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바라고 한 공부는 아니지만 나는 조금 더 전문적이길 바랬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누군가의 의견을 보곤 더 빠르게 검색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만큼 전문적이길 원한다면 국가시험을 치러서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그 자격증을 따려면 심리 쪽의 학위가 필요했고 나는 그 학위를 따려면 편입을 하거나 졸업을 한 뒤 다시 일 학년으로 학교를 입학하거나 학점은행제를 이용해서 뭘 해야 한다는데 지금 당장 내년에 복학을 마음먹은 내가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 만족스러운 공부에 대한 나의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거품 빠진 맥주처럼 그렇게 가라앉아버렸다. 학점은행제를 사용한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했지만 한 학점당 몇 만원의 금액을 지불하고 꽤 많은 학점의 수업을 이수해야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데 엄마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릴 자신도 없었고 당장 그만한 시간도 도움을 요청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난 며칠 동안 이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붙들고 끙끙 앓았고, 아빠와의 저녁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꿈을 좇다가 결국엔 사회에서 쫓겨나는 걸까' 참고)


너무 많은 지인들에게 물어봤고 정말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괜찮다 위로도 해봤고 엉망이라며 그냥 울어버리기도 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내가 어리숙했고 이 나이가 됐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내 염치만 자꾸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해도 자문을 구해도 결국 매듭은 내가 지어낼수밖에 없는 거였다. 어차피 시작한 공부 민간자격증이면 뭐 어때로 마무리를 지었고 자격증을 땄다. 학사, 학위, 학점은행제 등 별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자격증을 취득하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다 지나고 나니 공부하는 내용만큼은 내가 원했던 내용이었고 만족했으니까 시간을 허투루 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제 하나를 해치웠으니 제빵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려 학원에 상담 신청을 할 찰나 코로나가 2.5단계로 올라갔고, 확진자가 하루에 천명이 넘었고, 실기 수업이 어려워졌고 또 코로나라는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아 내 계획을 망치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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