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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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도 늘 곁에 있었던 듯 반가운 이가 있고, 자주 만나는데도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 이가 있습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이는 당연히 전자예요. 하지만 상대에게 제가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올여름에는 오래된 인연과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인데, 만난 지 스물다섯 해가 훌쩍 넘은 지금도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반갑고 고맙고 스스럼없는 이들이에요. 7월엔 그 인연들 중 총 다섯 명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두 사람이 여름휴가를 맞아 귀국하는 바람에 마련된 자리였는데, 정작 두 사람은 약속된 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참석을 못하고 국내에 있던 네 사람만 만나 수다 파티를 벌였지요. 2~3년 만에 만난 언니 2명, 그보다 더 오래 못 만났던 언니 1명과 함께한 자리는 점심부터 저녁까지 계속됐습니다. 다들 나이를 먹은 터라 화제의 대부분은 부모님 걱정, 자식 걱정, 노후 걱정이었지만, 맛있는 음식과 진솔한 대화가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서로 만나지 못했던 몇 년의 시간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었죠.
미국에서 온 두 사람과는 따로 날을 정해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저와 동갑인 친구였고, 한 사람은 저보다 네 살 많은 언니(제 청첩장 문구를 써준 언니예요)였는데, 한 사람은 종로에서, 또 한 사람은 부천에서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어요. 한 번 밖에 나갔다 오면 에너지가 급감해 금세 피로해지는 저로선 꽤나 하드한 스케줄(금요일, 일요일, 월요일, 이렇게 연속해서 3일을 만났거든요!)이었지만, 이를 기꺼이 감행할 만큼 행복한 만남이었죠.^^
따지고 보면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들 오래된 인연과 함께 일했던 시간은 고작 3년에서 5년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들에게 느끼는 애정과 신뢰도는 그 몇 배를 상회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답을 찾지 못할 정도예요. 어쩌면 알에서 깨어난 오리가 처음 만난 움직이는 물체에 애착을 갖는 것처럼, 저 역시 첫 직장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을 마음 깊이 각인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7월에 만났던 오래된 인연 중 한 사람과 다시 만나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고민을 나누고 근황을 터놓았습니다. 지난 만남 때 언니 직장과 우리 집이 가까우니 앞으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점심을 먹자고 약속했었거든요. 백화점 식당가에서 맛난 점심과 커피를 즐긴 후에는, 조만간 파주에 사는 또 한 명의 언니를 만나러 가기로 합의했습니다. 단톡방을 만들어 일사천리로 일정까지 확정 지었고요. 다 저에 비하면 추진력과 실행력이 월등한 언니 덕분입니다.^^
올해 여름은 하나의 만남이 계속해서 또 다른 만남을 부르는 행복한 선순환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오래된 기억의 창고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추억을 살포시 꺼내 보는 기분도 근사하고요.
오래됐다고 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좋은 인연이 오래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좋은 인연들이 저를 지탱해 줬기 때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