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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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연휴, 친정 엄마가 급성 신우신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하시는 일이 생겼습니다. 가벼운 복통쯤으로 여겼다가 큰 일 날 뻔한 거죠. 사실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친정집에 도착했을 무렵엔 "배가 좀 아프네" 하시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엄마 상태가 심상치 않으시더군요. 열이 나고 복통이 심해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였죠. 얼른 부축해서 인근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더니 이런저런 검사 끝에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옮기게 됐어요. 덕분에 생전 처음 앰뷸런스를 다 타봤답니다.
하지만 막히는 길을 뚫고 도착한 대학병원에는 대기 중인 앰뷸런스만 6대였어요. 연휴라 그런가, 아픈 사람이 엄청 많더군요. 결국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간신히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동안 엄마는 혈압이 떨어지고 쇼크가 와서 하마터면 패혈증 상태까지 갈 뻔했답니다. 정말이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 다행히 의료진의 빠른 응급처치로 고비를 넘긴 후 중환자실에 입원, 3일 후엔 일반 병실로 내려오실 수 있었어요. 퇴원은 그로부터 8일 후에 이루어졌고요. 그렇게 꼬박 2주 정도를 엄마만 신경 쓰느라 다른 일들은 다 미뤄둘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나마 일반 병실로 내려오신 다음에는 친절한 간병사 샘을 만나서 걱정을 좀 덜 수 있었지만요.
이제는 퇴원도 하고 통원 치료만 꾸준히 받으시면 되는 상태로 호전됐지만, 엄마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계실 땐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요. '이러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나이가 오십이나 됐는데도 엄마가 없는 제 삶은 상상이 안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갑자기 일흔일곱이라는 엄마의 나이가 실감 났어요. 매년 감자며 고구마며 농사지은 걸 보내주지 못해 안달하시고, 때마다 무김치 오이김치 배추김치를 담아 건네주시는 엄마가 너무 익숙해 엄마 나이를 잊고 지냈나 봐요.
몸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너 주려고 담아 놓은 김치가 다 익었겠다. 우리 사위는 덜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냐?" "얼른 나아서 집에 가야 제때 고구마를 캘 텐데..." 이런 걱정들로 안절부절못하시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에게 저는 "엄마는 몸이 낫는 게 먼저지, 지금 그런 걱정할 때야?"라고 면박을 주던 못되고 늦된 딸이었네요.
저 역시 엄마가 된 지 한참인데도, 엄마의 자식 생각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엄마 나이가 되면, 엄마처럼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