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드디어 워시타워가?
*메인 이미지는 LG전자 홈피(https://www.lge.co.kr/wash-tower/wl22myzu)에서 가져왔습니다. 제가 '원츄'하는 아이로 골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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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엔 없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워시타워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세탁기는 있으나 건조기는 없다는 얘깁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앞선 글에서도 얘기한 바 있지만) 저는 변화를 싫어하는 '귀차니즘 만렙' 소유자라 집에 뭘 새로 들이는 걸 싫어해요.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걸 귀찮아하거든요. 심지어 기계치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절친 중 한 명이 "로봇청소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이렇게 3개만 집에 들이면 인생이 달라진단다, 친구야"라고 노래를 불러도, 간신히 로봇청소기 한 대만 들였을 뿐 나머지는 그냥 '생까고' 있었답니다. (근데 로봇청소기는 정말 후회가 없긴 해요. '로봇이'라고 애칭도 붙여줬거든요. 저 대신 요리조리 열심히 돌아다니며 걸레청소를 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요.)
그런데, 바로 어제, 드디어 건조기를 우리 집에 들일 만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써온 빨래 건조대가 아작 났거든요. 아마도 너무 오래 써서 플라스틱(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스틸 혼합 제품이에요)이 삭아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전부터 '아, 쟤가 수명이 다 됐구나'하는 전조증상은 있었어요.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봉과 그걸 받쳐주는 플라스틱 받침대가 잘 맞물리질 않아서 자꾸 봉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거든요. 그래서 제가 "여보, 이거 아무래도 바꿔야 될 거 같아. 하나 새로 사줘요" 했더니, 남편이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볼게" 하더라고요. 그러더니만 봉과 받침대 부분에 노끈을 칭칭 감아서 고쳐 놓더군요. 그리곤 이렇게 말했어요. "어때? 이 정도면 한참 쓰겠지?"
헐, 어이가 없었지만, 역시나 여러 번 말하기 귀찮아서 그냥 남편이 고쳐준 대로 또 한참을 썼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 집 거실 한쪽에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빨래 건조대가 어제 제가 넌 빨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거예요. 처음 건조대가 팍삭 주저앉았을 땐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 많은 빨래를 기껏 다 널어놨더니만...ㅠ.ㅠ 이제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깜짝 놀란 남편이 저를 도와 수습을 하는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은 '그러게 내가 전에 말했을 때 새로 사줬으면 좋았잖아'였답니다. 실제로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고요.
물론, 남편도 나름의 입장이 있기는 해요. 건조대 사는 거야 돈도 얼마 안 들고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건조대 살 바엔 아예 건조기를 들일까?' 고민하고 있던 시점이라 건조대를 사기가 애매했던 거죠. 이사를 고민 중이던 시점이기도 했고요. '이사하면 새로 사자', 이런 마인드였달까요? 그러다 시간은 점점 지나가고 마누라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으니 그냥 이럴까 저럴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실 요새 건조기가 비싸기도 하고, 또 아예 세탁기까지 세트로 워시타워를 구매하게 되면 원래 쓰던 멀쩡한 통돌이를 버려야 하잖아요? 옛날 사람 마인드인 남편에게 작동 잘 되는 멀쩡한 애를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거죠.
어쨌거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건조대도 건조기도 들이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건조대가 사망하는 일이 생겼으니 이젠 둘 중 하나를 택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네요. 남편의 선택이 어느 쪽일진 모르겠지만, 저는 덕분에 '워시타워가 생기려나?' 하는 기대를 품으며, 제 소명을 마치고 사망한 건조대의 명복을 빌어줄 맘이 생겼습니다.
"건조대야, 그동안 고마웠어. 네 덕에 워시타워가 생긴다면 더더더 고마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