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끔 집밥이 생각날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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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라고 하죠? 성실한 주부님들도 그럴진대,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는 저 같은 불량주부야 오죽하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매일 밥 차리는 수고만 덜어준다면 조금 맛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받아들이는 저렴한(?) 미각의 소유자입니다. 그냥 남이 해준 밥이기만 하면 만사 OK인 거죠. 다행인 건 남편도 이런 제 성향을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굳이 집밥을 고수하지 않을뿐더러, 외식을 꺼리는 법도 없어요. 덕분에 저희 부부는 일주일에 최소 2~3번은 외식을 합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고기 먹고 회 먹는 특별한 외식이 아니라, 집 앞에서 콩나물국밥, 돌솥비빔밥, 청국장, 칼국수, 수제비, 김치찌개 등을 먹는 평범한 외식이에요. 가끔은 반주로 술을 곁들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집 근처 맛집도 줄줄 꿰고 있답니다.
제가 남이 해준 밥을 좋아하는 건 내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잘 차려진 한 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 같은 경우 요리를 잘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다 보니, 요리를 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요리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고, 남이 해준 밥을 먹거나(외식을 하거나) 햇반+밀키트 같은 간편식을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오히려 이쪽이 만족도도 더 높고요.
하지만 가끔은 남이 해준 밥 대신 순수한(!) 집밥-내가 만든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김밥,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불고기, 소고기 미역국 등 제가 잘하는 몇 안 되는 음식이 떠오를 때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요리를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김밥은 제가 제일 즐겨하는 메뉴예요. 남편과 아이들도 좋아하는 데다, 제 입맛에는 사 먹는 김밥보다 제가 만든 김밥이 더 맛있거든요.
재료는 구운 김 10장과 소금에 절인 오이, 단무지, 계란 지단, 김밥용 햄, 채 썬 당근볶음, 게맛살, 그리고 금세 한 쌀밥인데요, 밥은 찹쌀을 섞어 찰기를 더한 후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으로 간을 해줍니다. 그다음엔 김발 위에 김을 한 장 올리고 계란 지단을 먼저 얹은 후 밥을 살살 펴줘요. 그 위에 오이, 단무지, 햄, 게맛살을 얹은 후 당근을 넉넉하게 뿌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재료들이 잘 맞물리게 살짝 힘을 줘서 둘둘 말기만 하면 완성! 이렇게 총 10줄을 말고 나면 예쁘게 썰어 금세 먹을 건 접시에 담고, 나중에 먹을 건 한 줄씩 포일에 감싸 둡니다.
총 1시간 30분 내지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지루한 과정이지만, 맛은 늘 기대 이상이에요. 아들이나 남편은 김밥 세 줄 쯤은 앉은자리에서 해치우고, 소식가인 딸도 1줄 반 정도는 기본으로 먹을 정도입니다. 덕분에 성취감도 상당합니다. '난 요리 잘 못하고 안 좋아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제가 '김밥은 내가 좀 잘 말지'라고 자신할 만큼 반응이 좋으니까요.
물론 김밥을 마는 일은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이 고작입니다.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저 같은 게으른 귀차니스트가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할 때마다 가족들이 '맛있다'라고 칭찬해 주는 메뉴가 있다는 건 꽤나 기쁜 일입니다. 어쩌면 가족들의 그런 따뜻한 칭찬과 인정이 26년째 '요알못'인 저를 요리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