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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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로 만나는 분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저를 '작가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만, 처음엔 이 호칭이 너무 낯설고 어색해서 들을 때마다 얼굴이 간지러웠어요. 제 기준에 작가는 책을 몇 권쯤은 낸 사람, 혹은 최소한 등단이라도 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 기준에 따르면 저는 '작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작가'가 아닌 사람이 '작가'라고 불리는 모순을 감당하기 힘들었달까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작가'란 말을 뜻 그대로 풀이하면 '作家', 즉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니 나도 그 범주 안에 들 수 있겠다,라고 스스로를 인정한 까닭입니다.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저는 도전을 싫어합니다. 낯선 것을 두려워해서이기도 하고,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이기도 해요. 소심한 겁쟁이거든요. 그래서 '작가'-제 기준에서의 '작가'요.^^-가 되고 싶단 생각을 오래 해왔어도, 실천은 하지 못했습니다. 뭐든 하면 다 될 것 같던 젊은 시절에 서너 번 했던 도전이 전부 실패로 돌아간 터라, '이제 와서 무슨...'이란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굳이 '작가'가 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작가'라 불리고 있느니 상관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러다 몇 해 전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됐습니다.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가 한 번 도전해보라며 추천을 해주더라고요. 한참 망설이다 도전을 했는데, 그만 '똑' 떨어져 버렸어요. 어찌나 무안하고 창피하던지, 그 뒤로 한참 동안 '브런치'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답니다. '글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글 쓰는 플랫폼에 지원해서 떨어지다니...', 시쳇말로 '쪽팔리다'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러고 한참을 모르는 척 잊고 지냈는데, '블친' 중 한 분이 여섯 번인가 일곱 번만에 브런치 작가가 됐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셨더라고요. 그때 알게 됐습니다. 이곳에 도전하기만 하면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오만'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았습니다. 마침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 이번엔 신중하게, 그리고 공을 들여, 글을 쓰고 지원서(?)를 작성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응모하려면 일단 '작가'로 뽑혀야 하니까요. 다행히 이번엔 브런치가 제 손을 잡아주었어요. 나름대로 굳은 결심도 했습니다. '나 자신의 글을 써보자. 돈 받지 않는 글, 무용(無用)해서 더 의미 있는 글을 쓰자'라고요.
하지만 브런치에 15편 남짓한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쓰는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긴 할까?'라는 것이었어요. 스스로의 기준에 맞지 않아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어색해했던 것처럼, 왠지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덩달아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노하우나 경험을 공유하는 것도, 극과 극 성향인 두 아이의 육아(?)-육아라기엔 둘 다 너무 커버렸지만요-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라는 부정적 생각마저 커졌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고 다그치다가, 어느 순간 이런 깨달음에 다다르게 됐어요. '남이 나를 믿고 인정'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믿고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요. '넌 작가가 아니야. 작가라는 말은 너에게 과분해'라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보다, '작가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자'라고 스스로를 격려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요.
따지고 보면 제가 싫어하는 '도전'에는 실패와 성공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때론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게 '도전'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살면서 '엄마' 노릇까지 하느라, '좋은 엄마'나 '헌신적인 엄마'는커녕 '최소한의 엄마'로 간신히 살아가는 나의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