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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필요해!

-나만의 일 선택 기준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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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그러하듯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저 나름의 일 선택 기준인데요,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세 가지는 첫째 돈, 둘째 사람, 셋째 재미입니다.


돈을 첫 번째 기준으로 꼽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프리랜서 작가는 엄연한 직업이고, 경제적 활동을 담보로 하니까요.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나의 가치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프로 야구선수의 연봉이 실력에 준하듯, 프리랜서 작가의 원고료는 그동안 작업해온 모든 결과물의 총화입니다. 작가로서 나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한 것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아무리 일이 없어 마음이 급하다 해도 스스로 정한 원고료에 미치지 못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자의 최소한의 자존심이기도 해요.


그러나 원고료의 액수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일을 맡는 건 아닙니다. 이미 하고 있거나, 미리 얘기가 오간 일의 분량과 마감기한에 따라 결정은 달라질 수 있어요. 만약 현재 진행 중인 일과 일정이 겹쳐 둘 다 잘 해낼 자신이 없다면, 그 일은 거절합니다. 욕심은 자칫 화를 부를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의뢰받은 일을 제때 최상의 퀄리티로 끝마치는 건, 프리랜서 작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에요. 원칙을 어긴 프리랜서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돈이 탐나도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맡는 게 정석이죠.




두 번째 기준인 사람은 돈보다 조금 미묘해요. 먼저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는 동료가 연락을 해왔을 경우엔 대체로 일을 수락합니다.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어 믿을 수 있는 데다 손발도 잘 맞으니까요. 문제는 누군가의 소개로 연락을 해온 경우입니다. 소개한 이가 저와 친밀한 지인이라면 일단 한 번 만나서 얘기를 들어봅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일을 의뢰하는 회사는 어떤 곳인지, 내가 하게 될 프로젝트는 어떤 건지, 요모조모 살펴보는 거죠. 그래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인연을 맺게 됩니다.


현재 저와 일하고 있는 클라이언트 중에는 이런 식으로 만난 경우가 많아요. 처음엔 잘 모르는 이들과 일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걱정도 되지만, 매번 아는 사람들과만 일할 순 없으니까요. 물론 저는 도전과 모험을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입니다. 이건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끔은 낯선 이와의 만남이나 해보지 않은 일들이 저를 매너리즘에서 구원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 기준인 재미는 가끔 돈과 사람을 뛰어넘습니다.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라 일하면서도 재미를 찾게 마련인데, 저는 이 부분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물론 돈도 많이 주고 재미도 있는 일이라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개 재미있는 일은 돈과는 인연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렇다고 매번 돈 때문에 재미를 포기하진 않습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란 말이 왜 있겠어요? 입이 즐거우면 살이 좀 쪄도 감수할 만하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 재미가 있으면 돈이 좀 적어도 시간을 투자해볼 만합니다. 과정이 즐겁고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요.


PS: 참, 지난번 ‘성실한 게으름뱅이’ 칼럼의 후일담인데요, 우선순위에서 밀리긴 했지만 해당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콘텐츠 디렉터가 아닌 작가로 일하게 된 거지만, 재미난 프로젝트라 기쁜 마음이 큽니다. 함께 일하게 된 디렉터님께 배울 점이 많다는 것도 이 프로젝트의 장점이에요. 몇 권의 책을 상재한 출간 작가이신 데다 인문학적 소양까지 풍부하시거든요. 기존과 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합니다. 어쩌면 앞서 말한 세 가지 기준을 모두 갖춘 '드문' 프로젝트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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