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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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형 인간입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거든요. 원고 작업도 아침에 하는 게 생산성이 높은 편이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다릅니다. 불면증이 있는 딸은 정오나 돼야 겨우 일어납니다. 오히려 밤 시간에 더 생생해지죠.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요. 아들은 거의 매일 학원에 가지만, 수업이 끝나도 좀처럼 귀가하질 않습니다. 분명 수업은 10시 전에 끝날 텐데 돌아오는 시간은 자정을 넘겨서일 때가 많아요. 돌아와서도 새벽 2~3시까지 잠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 다 저녁형 인간을 넘어 야행성 인간에 가까운 셈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의 궁합은 최악입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다는 건 함께할 시간이 적다는 얘기니까요. 밥을 함께 먹는 일도 드물고, 각 잡고 진지한 얘기를 나눌 틈도 없습니다. 그냥 각자 일정에 맞게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몇 차례 스쳐 지나갈 뿐이죠. 특히 엄마 입장에서 걱정스러운 건 제시간에 뭘 먹이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가뜩이나 게으르고(!) 요리하는 걸 싫어하는 엄마라 외식과 배달 음식에 의존할 때가 많은데, 그마저도 활동시간이 달라 제대로 챙겨줄 수가 없으니 아이들의 영양상태와 건강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거죠.
덕분에 요즘 제 머릿속엔 '아들이 살이 많이 빠졌던데, 제때 밥을 못 먹어서 그러나?' 혹은 '딸의 두드러기가 낫질 않고 오래 가는 게 제대로 먹질 못해서는 아닐까?'와 같은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침형 인간인 제가 아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애들은 아직 젊고 건강하지만 전 건강에 신경 써야 할 40대 후반이니까요. 아무래도 갑작스레 생활습관을 바꾸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잖아요?
반대의 경우도 힘들긴 마찬가지입니다. 두 아이 다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밤 시간을 좋아하거든요. 한창 감성이 풍부할 나이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딸은 불면증이 심하고 아들은 음악 작업을 해야 하니 ‘빨리 자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어려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라이프 사이클은 벌써 1년 넘게 대체로 어긋난 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현재의 상황에 맞게 조금씩 개선과 보완이 이루어지더군요. 그 첫 번째 단계로 저는 제 일정을 가족 카톡방에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 때문에 집을 비웠을 때 딸에게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밥은 뭘 먹으면 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요. 또 아들이 밥값이나 동아리 활동비가 필요해 연락했을 때 엄마가 전화를 못 받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도록요.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저에게 일정을 미리 공유하도록 했습니다. 서로의 일정을 알게 되면 여러 가지 불필요한 걱정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배려가 형성될 수 있으니까요.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아들이 시간에 쫓겨 학원에 가기 전 집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면, 굶지 말고 ‘엄카’로 밥을 사먹으라는 얘길 해준다든지, 딸이 친구와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갔을 때 혹시라도 술이 과해 힘들어지면 엄마에게 연락하라고, 데리러 가겠다고 말해둔다든지, 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저는 걱정을 덜고 아이들은 엄마의 배려를 느끼고,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밤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저는 톡을 활용합니다. “아래층에서 민원 들어올라. 음악소리 좀 줄여줘” 혹은 “게임 할 땐 소리를 좀 낮춰줄래? 엄마가 신경이 쓰여서 잠이 안 온다.” 이렇게 질책이 아닌 부탁을 하면 아이들은 기꺼이 제 얘길 들어줍니다.
물론 가끔은 저도 사람인지라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쟤들은 왜 저럴까?’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저렇게 잠을 안 자면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의심스럽기도 한데, 그래도 그런 말들이 입에서 튀어나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노력은 대체로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아마 아이들은 아침형 인간인 엄마가 야행성 인간인 저희들에게 맞추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지 알 리도 없고 알려는 생각도 없겠지만, 그래도 서운하거나 속상하진 않습니다. 원래 모든 관계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인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