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불문, 가족 간 소외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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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최근 발병한 자궁내막 증식증 치료를 위해 소파술과 미레나 시술을 받았습니다. 일부러 휴가를 내서 함께 가준 남편 덕분에 무섭진 않았지만, 시술이 끝난 후 영양제 주사를 맞았음에도 컨디션은 좋질 않았어요. 토요일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요. 덕분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 몸이 아프니 아이들 역시 챙길 겨를이 없더군요. 한 마디로 금요일, 토요일, 엄마는 병가 상태였던 셈이죠.
딸의 경우, 엄마의 이런 상태를 잘 알고 있었어요. 성별이 같다 보니 제가 제 몸 상태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거든요. 덕분에 굳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본인이 알아서 밥과 약을 챙겨 먹어 제 걱정을 덜어주었죠. 하지만 아들은 달랐어요. 왠지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성별이 다르니 세세하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게 좀 민망했달까요. 덕분에 아들은 엄마가 아픈 줄도 모르고 금요일, 토요일을 보냈답니다.
문제는 일요일 새벽에 잠이 깬 제가 아들이 귀가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발생했어요.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에도 아들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더군요.-뭐 하느라 그렇게 늦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ㅠ.ㅠ-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맘을 추스르고 먼저 전화를 걸었어요. 받지 않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카톡을 남겼죠. "아들아, 엄마가 연락 안 한다고 여태 집에 안 들어오면 어떡하니? 빨리 와라"라고요. 다행히 집에 오던 중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들의 목소리도 들리고요. 그제야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난 아들은 오후 무렵 또 친구들을 만나러 밖에 나가더군요. 밥도 안 먹고 가길래, "뭐라도 사 먹어라"라는 얘길 했죠. 다행히 제 컨디션도 토요일보다는 나아진 상태였어요. 하지만 저녁 무렵이 되자 '아들이 또 새벽에 들어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카톡으로 "아들, 엄마가 금요일에 자궁 쪽에 문제가 있어서 시술을 받았어요. 무리하면 안 되니까 아들도 엄마 생각해서 좀 일찍 오세요"라는 전언을 남겼죠. 그랬더니 1분 사이에 "어떤 거? 많이 아파? 괜찮아?"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그래서 "응, 괜찮아. 걱정할까 봐 말 안 했지. 부인과 쪽 병이라 말하기도 좀 그렇고"라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그래도 대충이라도 말해주지 아예 몰랐어."라는 말과 함께 일찍 들어오겠다는 얘길 해주었습니다. 저도 "그래, 고마워"라고 답해줬고요.
그날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돌아온 아들은, 왜 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나만 모르냐, 상세하게까진 아니더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너무 서운하고 속상하다, 다 아는 걸 나만 몰랐다는 것도 서운하지만 엄마가 아픈데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신나서 놀다가 늦게 들어와 엄마를 걱정시켰다는 게 더 속상하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습니다. 아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아주 작은 부끄러움과 민망한 마음 때문에 아들을 가족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상처 입혔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사과했습니다. "엄마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할게"라고요. "그리고 큰 병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말로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들은 아직 어리니 굳이 다 말해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열여덟 살 아들은 생각보다 성숙했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되 아픈 엄마가 상처받지 않도록 말을 세심하게 골라 사용했던 걸 보면요.
사람은 누구나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미성년자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을 생각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숨기거나 말하지 않는 건, '배려'가 아니라 '무시'일지도 모릅니다.
미욱한 엄마가 아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깨우친 하루였네요. 그리고 앞으로는 이유를 불문하고 가족 간 소외는 절대 안 되는 걸로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