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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쉼 없이 일하는 이유

-마음이 가난한 사람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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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쉼 없이 일하는 편입니다. 기자 겸 에디터로 10년, 프리랜서로 15년. 도합 25년간 꾸준히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죠. 물론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일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고,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일에서 완전히 손을 놓았던 적은 없어요. 그런 걸 보면 저는 꽤나 일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요. 좋아한다고 해서 쉼 없이 일한다? 게으르고, 사람 만나는 걸 꺼리고, 에너지 총량도 극히 적은 사람이? 그렇게 보면 뭔가 이상하죠? 굉장히 모순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하루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넌 왜 끊임없이 일하니?’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더군요. 첫 번째는 인정 욕구예요. 저는 유독 인정 욕구가 강한 편입니다. 여기엔 다른 사람의 인정뿐 아니라 나 자신의 인정도 포함돼요. 남들이 ‘너는 뭐든 믿고 맡길 수 있어’, ‘이번에 쓴 글 참 좋더라’라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제 스스로 저를 인정하게 만드는 동력이 바로 일이라는 거죠. 일이 없는 시간을 즐기기보다 ‘이러다 일이 아예 끊기면 어쩌지?’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예요. 저에겐 일이 곧 저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상징 같은 거랄까요?


이렇게 된 데는 제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커요. 저는 조금 힘들게 자랐거든요. 경제적으로 부족한 환경이라 저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뭐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부모님은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분들이셨어요. 얼마 안 되는 경제적 원조 대부분이 두 살 위 오빠에게 집중됐으니까요. 덕분에 제 어린 시절은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기 위한 전력투구의 과정과도 같았어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죠. ‘뭐든 잘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거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어’, 라는 강박이 저를 지배했고요. 이런 성향은 쉽게 변하질 않아서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 제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이유는 어쩌면 첫 번째 이유와 연결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바로 불안감이 두 번째 이유거든요.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예요. ‘언젠가 남편이 날 떠날지도 몰라. 그럴 때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비참할 거야’라든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서 지금의 경제적 안정이 사라질지 몰라. 그때를 위해서라도 일을 계속해야 해’ 같은, 굳이 안 해도 되는 부정적 생각들이 여전히 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아마 절 아는 누군가는 이런 얘길 들으면 “말도 안 돼”라며 웃을지도 모르겠어요. 겉으로 보기에 전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이런 제 망상(?)이 현실화하기엔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본분에 아주 충실하답니다. 다른 사람에겐 냉정하지만 아내에겐 친절하고, 생활 면에서도 크게 부족함이 없을 만큼 벌고 있고, 위험한 투자로 저를 불안하게 하는 일도 없고요. 그런데도 저는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불안한 마음을 일로 덮어버리곤 하는 거죠.


이제는 부유하진 않아도 경제적으로 힘든 환경에선 벗어난 지 오래이건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가난한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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