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라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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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성격도 모두 다른 모녀 사이지만, 딸과 저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한 가지를 깊이 파는 '덕후' 기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둘 다 아이돌과 웹소설에 빠져 있거든요. 딸과 '덕질'을 함께하는 건 생각보다 장점이 많아요. 해당 주제에 관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 데다,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여지가 많거든요. 이를테면 '포카(포토 카드)' 슬리브나 홀드처럼 굿즈 수집에 필요한 물품을 공유한다든지, 서로에게 유용한 정보를 교환한다든지, 하는 거죠. 서로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 역시 장점이고요.
먼저 아이돌 얘기부터 해볼게요. 현재 딸의 '최애'가 몬스타 엑스의 아이엠이라면, 저의 '최애'는 아이유예요.-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최애'의 이름 앞 두 글자가 같네요!-저희는 둘 다 공식 팬덤인 '몬 베베'와 '유애나' 멤버이기도 하답니다. '최애'의 콘서트를 앞자리에서 '직관'하려면 공식 팬덤 가입이 필수거든요. 제가 아이유 팬덤에 처음 가입한 게 2020년인데, 그 계기가 2019년 11월 인천에서 열린 아이유 전국투어 콘서트 'Love, Poem'이에요. 당시 딸의 빠른 손놀림 덕분에 피 튀기는(!) 티켓팅 전쟁을 뚫고 3층 좌석을 확보할 수 있었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이유 느님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플로어석이 너무나 탐나더라고요. 그래서 딸에게 물었죠. "플로어석에 앉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그랬더니 "공식 팬덤에 가입해야 돼. 팬덤에게 선예매 권한을 주거든"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래서 4기 팬덤 모집 공고가 나자마자 바로 가입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콘서트는 2년간 열리지 않았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어요. 다음 콘서트를 노려보겠다는 각오로 5기 팬덤에도 가입, 드디어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콘서트 'The Golden Hour'에 다녀올 수 있었어요. 물론 이번에도 경쟁률이 치열한 플로어석 예매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요.
이번 콘서트 티켓을 예매해준 것도 딸이랍니다. 딸의 아이돌 덕질은 꽤나 역사가 깊거든요. 인피니트와 비투비, 아라시-1999년 데뷔한 일본의 톱 아이돌이에요-를 거쳐 몬스타 엑스에 도달했으니까요. 아이돌 덕후로서 상당한 공력을 자랑하는 셈이지요. 게다가 게임 덕후이기도 해서 손이 빠르니 티켓팅에 최적화되었다고나 할까요. 덕분에 순식간에 마감된 아이유 느님 콘서트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답니다. 3년 만의 콘서트는 정말이지 최고였어요. 저녁 7시부터 약 3시간 30분가량을 격한 흥분과 감동 속에서 보냈으니까요. 딸이 아이돌 덕후가 아니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호사였죠.
이번엔 웹소설 얘길 좀 해볼게요. 얼마 전 드라마화됐던 김세정, 안효섭 주연의 <사내 맞선>이나, '네이버 시리즈' 광고에도 등장했던 <재혼 황후> 같은 작품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저희 모녀는 둘 다 이런 웹소설의 '덕후'예요. 물론 딸이 좋아하는 건 로판(로맨스 판타지) 장르고 제가 좋아하는 건 로맨스 장르지만, 재미난 작품은 서로 정보를 공유한답니다. 둘 다 취향이 분명하고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서로의 추천 작일 경우, 퀄리티가 일정 수준 이상이거든요.
한때는 웹소설뿐 아니라, 추리소설과 심리학 책에 홀릭하기도 했어요. 서로 읽었던 책 목록을 공유하며, 각자의 '최애' 작품을 추천하기도 했고요. 다들 아시겠지만 좋아하는 게 같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친밀감을 높여주는 요인이잖아요? 대화 소재 또한 풍성하게 만들고요. 그런 점에서 '덕후', 즉 '덕질'을 함께하는 동료로서 우리의 연대는 저와 딸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덕후가 되길 참 잘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