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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두드러기

-몸은 정직하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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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딸은 심한 두드러기 증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편이거든요. 엄마와의 갈등과 입시 스트레스로 방황하던 고3 때도 비슷한 증세로 한참을 고생했었죠. 대학병원 피부과에 매주 갔을 정도니까요. 이번 두드러기는 말하자면 퇴사 후유증일 텐데, 마음의 상처는 그 원인을 끊어낸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때로 몸은 그 무엇보다 정직하다는 것도요.


딸이 취직해 한시름 놓았던 건 3개월 여로 끝이 났습니다. 딸은 다시 취준생으로 복귀했어요, 몸과 마음을 모두 다친 채로요. 뒤늦게 알게 된 거지만, 딸이 그토록 회사에 가기 싫었던 건 진상 고객과의 상담 때문이 아니라 상사의 괴롭힘 때문이었습니다. 입사한지 고작 2개월밖에 안 된 신입이 뭘 물을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그런 것도 모르냐?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게 맞냐?'고 인신공격을 하는 상사가 문제였던 거죠. 나름 똘똘하고 일머리도 있다 여겼는데, 그런 얘길 반복해서 들으니 딸의 자존감이 무너졌던 모양입니다. 잘 모르면 가르쳐주면 될 일인데, 제대로 가르쳐주진 않고 매번 부족하고 모자라다 탓하니 완전히 의욕을 잃을 수밖에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한동안 딸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와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툭툭 털어버리던 딸이, 언젠가부터 말을 잃고 좋아하던 게임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기 시작했으니까요. 불면증과 우울증이 심해져 병원에도 다니게 됐고요. 하지만 약을 먹어도 딸의 증세는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아침마다 회사에 갈 때면 울 듯한 얼굴로 '가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제가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침묵하던 그 시기에 딸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의 몸에서 자해한 듯한 흔적을 발견했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는 딸에게, 힘든데 억지로 버틸 필요 없다고, 너 자신을 잃어가면서 버틸 만큼 가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언제든 그만 둬도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딸은 많이 울었어요. 저도 울었고요. 그리고 며칠 후 딸은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한동안 말을 잃었던 딸이 차츰 말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예요. 딸이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었던 걸 알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고요.


결과적으론 더 나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한 셈이지만, 딸의 상처는 그것만으론 치유되지 않았어요. 말을 찾은 대신,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요. 벌써 한 달 가까이 피부과에 꾸준히 다니며 주사와 약 처방을 받고 있지만, 증상은 좀처럼 완화되질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의사의 권유로 고3 시절 다니던 대학병원 피부과에 예약을 하기에 이르렀죠.-대학병원 진료는 내가 원한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이 또한 2주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답니다.ㅠ.ㅠ- 몸 이곳저곳이 울긋불긋한 데다 내내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딸의 건강도 좋지 못한 상황입니다. 마음이 다치니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인지도요. 어쩌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보이는 정직한 몸 덕분에, 저 또한 딸의 상처를 한 번이라도 더 헤아려보게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발, 가능한 한 빨리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회복하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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