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명함이 없는 이유

-굳이 많은 사람에게 나를 알릴 필요는 없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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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프리랜서는 따지고 보면 일종의 1인 기업인데, 기업 대표로는 그리 적절하지 않은 성향이랄까요. 뭐, 사회적 관계에선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도 잘 나누고, 어색하지 않은 상황으로 분위기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낯선 사람을 꺼리는 타입인 거죠.


그래서 잡지 기자로 일하던 시절엔 여러 가지 고충이 많았어요. 인터뷰나 취재 섭외를 위해선 낯 모르는 이들에게 전화 연락을 해서 취재 가능 여부나 촬영 일정 등을 상의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전화만 걸려고 하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거나 너무 세차게 두근거려서 곤란할 지경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거절당하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이런 성향은 쉽게 변하질 않는 터라 아직도 제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15년 차 프리랜서 작가지만, 한 번도 명함을 제작한 적이 없어요. 가끔 저에게 일을 주는 편집 기획사나 출판사에서 프로젝트 관련 명함을 만들어준 적은 있어도, 제가 주도해서 제 명함을 만든 적은 없다는 거죠. 그 말은 달리 표현하면, 명함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을 가능한 한 회피했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그도 그럴 것이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진행한 대부분의 일이 그냥 알음알음, 소개소개로 연결된 일이라, 명함을 주고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거든요.


간혹 처음 만나는 사이일 경우에도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오늘 인터뷰(취재) 진행할 최혜정입니다"라고만 소개하고, 흔치는 않지만 명함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웃으면서 "제가 지금 갖고 있는 명함이 없네요"라고만 대응했어요. 사실 취재처나 인터뷰이가 알아야 할 사람은, 저 같은 프리랜서 작가가 아니라, 섭외를 진행한 편집 기획사나 출판사의 에디터이다 보니, 제 이름이나 연락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딱히 없기도 했고요.




사실 명함이 없다는 건, 나를 알릴 의지가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굳이 나를 알려서 뭐하나, 이런 생각인 거죠.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겠지만,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싶진 않아, 이런 생각이기도 하고요.


물론 저는 1년 내내 꽤나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생활도 유지해요.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겠어',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될 거야',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 같은 목표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답니다. 그 이유는 이 글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유독 낯을 가리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이 아직 직장에 다니는 덕분이기도 해요. 남편이 버는 돈으로 생계유지가 되니, 제 성향을 거스르면서까지 일을 늘리고 싶진 않았던 거죠. 그런 점에서 가끔은, 지난 15년간 명함 한 장 파지 않고도 프리랜서 작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명함 없이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친구 수가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닌 것처럼, 나를 찾는 이가 많다고 일이 더 많아지거나 돈이 더 많이 벌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허수는 언제나 존재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겐 명함이 필수 일지 몰라도, 저에겐 선택의 영역이란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여태껏 명함이 없는 건, 제 어딘가에 장착된 게으름과 '귀차니즘'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단은 저의 선택인 걸로 해두겠습니다. 그래야 더 '뽀대'가 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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