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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남편이 때론 얄밉다

-초지일관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랍니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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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쉼표의 위치가 중요하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변함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어머, 남편이 엄청 로맨틱한가 봐요'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결같음'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이기 때문. 특히 사진 찍(히)는 일을 몹시 싫어한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사진 찍는 일은 안 좋아해서 남편과 함께 찍은 여행 사진이 별로 없다. 심지어 결혼할 때도 남들 다 찍는 스튜디오 촬영을 안 하겠다고 해서 결혼식 당일에만 사진 촬영을 했다.ㅠ.ㅠ 애들 돌사진도 내가 우겨서 스튜디오 촬영을 했지, 아니었음 그 예쁜 시절 사진이 하나도 안 남을 뻔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얘길 왜 하냐고? 그 이유, 지금부터 나온다.




지난 일요일, 크리스마스인데 집에만 있자니 아쉬워서 남편과 함께 산책 겸 스타벅스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서로 손을 꼭 잡고 길을 가는데, 건너편에 드레스 대여 숍이 보였다.


"여보, 저기 걸린 저 드레스 예쁘다. 나도 한 번 입어보고 싶네."

"입어보면 되지."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드레스 입을 일이 있어야 말이지."

"입을 일을 만들면 되지. 친구들이랑 파티 한 번 해. 드레스코드를 정해서 다들 드레스 입고 만나면 되잖아."

"하하하, 아마 내 친구들 드레스 입고 만나자고 하면 '얘가 미쳤나' 이럴걸? 근데 상상만 해도 흐뭇하긴 하다. 호텔 룸 하나 빌려서 다들 드레스 입고 와인 파티 같은 거 하면 멋지겠네."


그날의 얘기는 대충 여기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가 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결혼할 때도 스튜디오 촬영을 안 했던 터라, 남편과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 내후년이 결혼 25주년이기도 하고... 사실 나 같은 일반인이 드레스 입고 헤어 메이크업 하는 일은 그런 이벤트 때밖에 없지 않나.


그러나 남편은 그런 이벤트를 할 마음도, 하다못해 이벤트의 조력자가 될 마음도 없었던 거다. 그러니 '나랑 같이 해'가 아니라 '친구들이랑 같이 해'가 된 거겠지. 그런 거 보면 내 남편이지만 참, '한결같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마누라가 하고 싶어 해도 자기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이 굳은 신념의 소유자 같으니라고... 남편의 '한결같음'이 가끔 얄밉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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