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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서로 닮아간다?

-남편과 함께 갔던 노래방 이야기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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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


남편은 술 마시고 노래방 가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나?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노래방을 싫어한다. 노래방 특유의 큼큼한 냄새나 인위적인 향기도 싫고, 노래 부르는 것도 안 좋아하고, 흥을 돋우기 위해 탬버린을 흔드는 것도 싫다. 그래서 아무리 남편이 노래방에 가자고 꼬셔도 10번 중 9번은 모르는 척한다.


그런데, 월요일 날 회식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혼자서라도 노래방에 가겠다는 거다. 내가 "같이 갈까, 여보?"라고 물으니 "넌, 노래방 안 좋아하잖아"라면서 신발을 신는다. 그날따라 왠지 혼자 보내기가 안쓰러워서 "내가 노래방은 안 좋아하지만, 자기는 좋아하잖아"라고 말하며 남편을 따라나섰다.

(딸이 옆에서 "엄마, 플러팅 완전 쩐다"라고 얘기해서 민망했다는...)




남편의 단골 노래방에 가서, 수없이 들었던 남편의 18번(부활의 <사랑할수록>,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 윤도현의 <사랑 Two>, 김세영의 <밤의 길목에서> 등) 퍼레이드를 다시 한번 들으며, 나 역시 옛날에 좋아했던 노래들을 불러봤다.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 박선주의 <귀로>, 이상우의 <슬픈 그림 같은 사랑> 같은 아름답지만 쓸쓸하고 처연한 노래들을.


점수를 확인하지도 않고 탬버린을 흔드는 일도 없이 온전히 노래에만 집중했던 그 시간은, 함께 있는데도 혼자인 것 같고 노래와 반주가 계속 흘러나오는데도 정적과 침묵에 휩싸인 것처럼 편안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 여를 노래방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길. 마음속 화를 노래로 덜어낸 듯 개운해 보이는 남편을 보며, 불현듯 '우리는 참 많이 다른데, 또 많이 비슷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의 분위기도, 침묵을 굳이 회피하지 않고 조용히 상대의 옆을 지켜주는 마음도.


아마도 20년 넘게 함께해온 시간이 가져다준 선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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