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거 양보해주는 건 사랑이 없인 불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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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분가해 나가신 것도 벌써 4~5년 전. 그 후론 일주일에 2~3번 만나 점심을 함께 먹고 있다. 게으르고 요리 실력도 없는 며느리다 보니 주로 밖에서. 어제는 요가 수업이 끝난 후 주차장 쪽으로 가다가, 헬스를 마치고 나온 어머니와 우연히 만나 평소 즐겨 가는 곤드레밥집으로 향했다. 나물 반찬이 맛있고, 원하는 만큼 리필이 가능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가는 맛집이다. 이 집은 밀가루를 입혀 튀기듯 구운 가자미를 반으로 잘라 인당 먹을 수 있게 내어주는데, 어머니는 늘 그중 큰 놈을 나에게 주신다. 어제도 이건 너 먹으라며 살 많고 실한 꼬리 쪽을 내 밥그릇에 얹어주셨다. 아, 마음이 찡해지는 시어머니의 '찐'사랑. 나는 "엄마, 고마워요"라는 말과 함께 맛있게 가자미 살을 발라먹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한 자리. 남편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여보, 오늘 엄마랑 점심 먹는데, 엄마가 나에게 두 토막 나온 가자미 중 더 큰 쪽을 주시는 거 있지? 엄마는 날 정말 사랑하나 봐."
"얘 또 오버하네."
남편의 웃음 섞인 핀잔에 내가 한 말.
"여보가 몰라서 그러는데, 맛있는 거 양보해주는 건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니까 엄마는 진짜 날 사랑하는 거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나는 20년 가까이 시어머니와 한집에 살았다. 신혼살림을 시댁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난 며느리니까 잘해야 돼'라는 강박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친정엄마만큼 시어머니가 편해졌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건 우리 시어머니가 '오픈 마인드'라서다. 우리 시어머니는 나를 늘 '혜정아'라고 호칭한다. 한 번도 '에미야'라든지, 'OO엄마야'라고 부르시는 법이 없다. 어머니 친구들에게도 항상 '우리 혜정이'라고 소개한다. 나 역시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는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면적이고 친밀하며 굉장히 끈끈하다. 굳이 매개가 되어줄 내 남편이나 내 자식들이 없어도 충분히 편한 관계라는 얘기다.
이런 관계가 가능했던 건 남편과 시어머니 덕분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남편이 불효자까진 아니지만 효자에서 다소 벗어난 타입이라 시어머니와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달까? 물론 시어머니가 무뚝뚝하고 무심한 아들보다 다정하고 살가운 며느리와 대화하는 걸 선호하셨던 것도 있을 테고, 시어머니가 어떤 얘길 하시든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해주는 내 성격도 한 몫했으라 짐작한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상호적인 것.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관계는 어그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시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팔 할 이상 어머니 덕분이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