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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산책의 효용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니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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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코로나에 확진된 일주일간 PT수업은 잠시 쉬기로 했다. 요가수업은 선생님이나 수강생들과의 근접 교류 없이 내 매트에서 내 몸에 집중해 수련하면 되지만, PT수업은 전담 트레이너와 1대 1 밀착수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kg 감량 목표도 뒤로 미뤄졌다. 문제는 운동량 역시 부족해졌다는 것. 할 수 없이 그 기간 동안 '하루 6,000보 이상 걷기'를 실천해보기로 했다.




첫날인 월요일. 추위에도 끄떡없도록 든든하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섰는데,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막막해졌다. 그동안은 산책을 하더라도 스타벅스에서 유자민트티 테이크아웃하기, 전통시장에서 가래떡 사기, 공원 5바퀴 돌기, 뭐 이런 식으로 늘 스스로에게 소소한 미션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처럼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느릿느릿 걷는 산책은, 이전엔 별로 해보지 않은 방식의 낯선 산책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생각 없이 그저 걷는 데만 집중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그동안은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꽤 내공 있어 보이는 잔치국숫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 새로 지은 주민센터 건물에서 문화센터 강좌 같은 걸 진행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 예전에 몇 번 간 적 있던 갈빗집이 김치찌개집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전에도 여러 번 오갔던 길인데 오늘 알게 된 것들을 그때는 몰랐던 건, 경주마가 양 옆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듯 해야 할 일에만 모든 생각이 집중됐던 탓이겠지. 그러고 보면 가끔은 목표 없이 머릿속을 텅 비우고 기존과는 다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다.


낯선 산책길에서 발견한 새로운 깨달음. 목적 없는 산책은 그 자체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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