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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

-친구가 던진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답하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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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에 누가 제일 자존감이 높을까?"


어제 친구가 던진 질문에 잠깐 아연해졌다. 약간 허를 찌르는 질문 같았달까? 머리 복잡한 거 싫어하고, 깊이 생각하는 걸 꺼리는 타입이라, 이런 질문을 한 번도 던져본 적이 없거든. 뭐랄까,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친구라고 한들 내가 걔를 어떻게 다 알겠어?'가 친구들을 대하는 나의 기본자세인지라, 이런 질문 자체를 회피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남한텐 냉정하지만 내 사람들에겐 관대한 성향이기도 하고(친한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한 온도 차가 심하고, 한 번 내 사람이라 생각하면 의문을 갖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너무 깜짝 놀랐던 건 "내가 생각할 땐 혜정이 네가 제일 자존감이 높은 것 같아"라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자존감이 높다고?


'글쎄, 예전에 비하면 자존감이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제일 높은 수준은 아닐 텐데...'라는 게 솔직한 내 생각이지만, 나를 30년간 보아온 친구의 말이니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친구가 "대학 처음 들어왔을 땐 우리 중에 네가 제일 자존감이 낮았는데, 지금은 제일 높은 것 같아"라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30년 전 나는 늘 내가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 아들 중심의 가부장적이고 가난한 집안에 '예쁘지 못한' 딸로 태어나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다 보니 스스로를 존중할 줄 몰랐던 탓이다. 그냥 나 자신으로 사랑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뭐든 잘하려 애썼고, 그러다 보니 항상 남의 평가에 예민하고 남의 시선에 민감했다. 20년 동안 '나'보다는 '남'을 더 신경 쓰면서 살아왔던 셈이다.


그러던 내가 바뀐 건 대학에 들어오고 난 이후부터, 엄밀히 말하면 남편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다. 뭘 하든 그냥 남이 하자는 걸 따라가기 바쁜 나에게, 남편은 늘 "혜정아,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라며 의견을 물어주었다. 그리고 못하는 걸 남에게 보이기 싫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나에게, "처음 하는 건데 못하는 게 당연하지. 내가 잘 가르쳐 줄게"라며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주었다. 남편 덕분에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난 뭘 하고 싶은 거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고,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됐다.


나 자신을 온전히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을 만나, '시든 꽃' 같던 내가 '활짝 핀 꽃'이 된 셈이다. 그러니 내 자존감 상승의 비결은 남편에게 있을 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 자존감이 더 높은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자존감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제로 '예전의 나'는 나를 싫어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좋아한다. '예전의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썼지만, '지금의 나'는 남보다는 내가 우선이다.


모자라고 부족해도 내가 싫지 않고 밉지 않다는 마음이 든 순간, 남은 생각보다 나에게 별 관심이 없고 남의 의견은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달라졌다. 아마 친구는 나의 그런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한 거겠지. 역시 30년 지기 친구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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