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긍정을 위해 필요한 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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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지 않고'란 말을 좋아합니다. 모순된 얘기지만 저는 그런 인간 유형이 아니기 때문이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합니다. 또 그것에 가닿지 못해 좌절하고요. 저 같은 회피형 인간에게 '서슴지 않고'란 그런 의미예요. 몹시 원하지만 끝내 손에 넣지 못하는, 그래서 더 갖고 싶은 무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서슴다'는 1)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2) 어떤 행동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를 의미합니다. 저에게 꼭 맞는 단어인 셈입니다. 저는 결단의 순간, '이렇게 결정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를 먼저 떠올리는 유형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서슴다'에 적합하지만, '서슴지 않고 행동하다'를 갈망하는 인간인 셈입니다.
사실 부정형이 긍정형보다 더 긍정적 의미를 갖는 단어가 '서슴다'만 있는 건 아니에요. '주저하다', '망설이다'도 비슷한 유형의 단어니까요. 그럼에도 유독 '서슴다'에 맘이 쏠리는 건 '시옷'을 반복해 사용하는 단어가 흔치 않고, 묘하게 어감이 부드러워서인 것 같아요. 아마도 '미음'이 주는 유하고 온화한 이미지 때문이겠죠. 일상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점도 끌리는 대목이고요. 어쩌면 품고 있는 뜻이 저와 너무 비슷해서 한편 좋으면서 싫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보다 긍정적인 의미의 부정형을 선호하는 것일지도요.
다행인 건 저와는 성향이 전혀 다른 남편 덕분에 '서슴다'에서 '서슴지 않다' 쪽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겁니다. 경험을 통해 배운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7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할 때, 저는 40평 형대로 가자는 남편의 의견에 반대해 30평 형대로 갈 것을 고집했거든요. 빚을 많이 져야 한다는 생각에 겁이 덜컥 나서였죠. 하지만 결과적으론 남편의 의견이 옳았어요. 평형이 클수록 집값은 더 많이 올랐으니까요.ㅠ.ㅠ 그때 이후로 재테크에 관한 한 남편의 의견을 따르자고 결심했어요. 저는 돈을 모으고 쓰는 법만 알지 투자는 전혀 모르거든요.
얼마 전 가지고 있던 차를 팔고 렌터카로 바꾸자는 남편의 말을 이견없이 따른 것도 그 때문이에요. 남편 말처럼 이제는 '소유하지 않는 편리함'을 따르는 것도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매달 내는 월비가 만만치 않긴 하지만매년 세금과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고요.
앞으로도 자산에 관한 한 남편의 결정을 따를 예정입니다. 물론 유의해야 할 점도 있어요. 남편과 헤어지면 안 된다는 것! 남편은 저를 대신해 '서슴지 않고' 결정을 내려줄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음, 그러고 보니 회피형인데 의존적이기까지 한 나란 인간을 잘 보듬어주는 남편에게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마워요,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