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찬하다

-24년 전 청첩장에 담긴 사연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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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참 좋습니다. 오래도록 어깨 맞대며 살자고 소중한 약속합니다. 오셔서 따뜻하게 축복해 주십시오. 그 따뜻함 아래서 늘 믿어주고 서로 북돋아주며 찬찬하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오래전 남편과 결혼할 당시 청첩장에 적혀 있던 문구입니다. 남편은 같은 학과 4년 선배였는데 제가 몹시 좋아하며 따라다녔던 터라 그 사실을 아는 제 친구들은 다들 저 문구를 제가 쓴 줄 알았다네요. 이런이런, 저는 얼마 전 친구들과 카톡방에서 얘길 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시 친구들은 청첩장을 받아보고 "어휴, 네 남편이 그렇게 좋냐?" 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네요. 뭐, 제 친구들은 예쁘고 어린(?) 제가 늙다리(?) 복학생과 결혼한다며 저를 아까워했었거든요(제 나이 스물여섯 일 때의 일인 데다 제 친구들은 다 제 편일 수밖에 없으니 부디 흐린 눈으로 봐주시길요^^).




사실 저 문구는 저와 제 남편의 사연을 잘 알고 있는 절친 언니가 써준 글이랍니다. 저보다 4살이나 위인 언니였는데-그러고 보니 남편과 동갑이네요-늘 저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었죠. 지금은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진 못하지만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은 언니예요.


벌써 24년 전 일인데도 청첩장 문구를 받았을 때 너무 감탄하며 좋아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 사람이 참 좋습니다"로 시작되는 청첩장 문구라니... 이보다 새롭고 참신하고 아름다운 문구가 또 있을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쓰인 "찬찬하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도 근사했답니다. 언니가 이 문구를 써주기 전까진 '찬찬하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지만, 왠지 멋져 보였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성질이나 솜씨, 행동 따위가 꼼꼼하고 차분하다"는 뜻이더군요. 뜻도 발음이나 뉘앙스만큼 인상적이었죠.


그 뒤로 왠지 이 단어가 눈에 박히고 귀에 감겼어요. 아마도 제 삶의 화양연화를 함께한 단어라 그랬을 테죠.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청춘의 한 페이지, 그 중심에 있는 어휘니까요.



PS: 오늘은 청첩장 문구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레 '-하다'체가 아닌 '-해요'체가 됐네요. 문체가 달라져 익숙하지 않으시더라도 친근하게 봐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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