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오이소박이, 시어머니의 열무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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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가끔 눈에 보일 때면, 너무나 확실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벌써 결혼 24년 차가 됐지만, 저는 단 한 번도 김치를 담가본 적이 없어요. 워낙 게으르고 힘든 걸 꺼리기도 하지만, 기껏 좋은 재료를 사다가 완전히 망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예 손을 댄 적이 없거든요. 게다가 틈만 나면 양가 어머니들이 김치를 보내 주시니 제가 굳이 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김장 김치는 물론이고 철마다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오이지, 짠지, 동치미, 총각김치, 깍두기 등 종류도 다양한 김치들을 정성스럽게 담가 보내 주시니, 김치를 담글 일도 사 먹을 일도 없을 수밖에요.
얼마 전 친정에 갔을 땐 엄마가 "너 오면 주려고 엄마가 오늘 담갔어"라고 하시면서 맛난 오이소박이를 건네주셨고, 오늘은 "혜정아, 엄마가 김치 해놨다. 가져다가 저녁에 먹으렴"이란 말과 함께 시어머니가 맛깔스러운 열무김치를 전해 주셨어요. 덜 익은 김치만 찾는 남편을 위해 항상 갓 담근 김치를 보내 주시는 고마운 우리 엄마들. 덕분에 오늘 저녁엔 식감이 살아 있어 먹을 때마다 입맛을 돋우는 신선한 오이소박이, 열무와 얼갈이배추에 갖은양념을 듬뿍 넣어 버무린 자작한 국물의 열무김치로 우리 부부 둘 다 밥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답니다.
오십 넘은 아들, 딸에게 혹은 며느리와 사위에게 조금이라도 맛난 거 입에 넣어 주고 싶어서 아픈 다리로 분주하게 오가며, 또 아픈 허리를 부여 잡아가며 제철 재료로 맛난 김치 담가 주시는 엄마들의 사랑이 있어서, 오늘도 저희 집 식탁은 풍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