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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각성은 갑자기 찾아온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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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의 일상은 물리치료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가능하면 오전, 안 되면 오후에라도 물리치료 일정을 끼워 넣는 거죠. 딱히 실감은 안 나지만 그래도 물리치료를 받고 나면 조금쯤은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내내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랄까요?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사실 전 생각보다 까탈스럽고 시니컬한 인간입니다. 20대 땐 누가 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견지했었고, 30대 땐 무슨 일이든 일단 참고 견뎌보긴 하겠지만 어느 순간 아니다 싶으면 냉정하게 뒤돌아서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은 나이고, 그 무엇도 나보다 중요하진 않다고 여겼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모순적인 얘기지만 저는 이혼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어요. 흔히들 '메리지 블루'라고 하지요? 남편을 많이 좋아했고 또 그래서 결혼하고 싶었지만, 결혼을 앞두고 '이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를 확신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더군요. 그때 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런 거였습니다.


'결혼 또한 숱한 선택들 중 하나일 뿐이다.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혼을 선택하면 된다. 이혼은 결혼에 실패했다는 증거이거나 그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수를 인정하고 번복하면 리셋이 가능하다.'


저는 이런 사고의 흐름을 거친 후에야 무사히 남편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지금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냐고요? 음, 결론은 간단합니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들쑥날쑥한 요즘 기분 상태가 그걸 실감하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하루는 '괜찮아, 혜정아. 심하게 다친 건 아니잖아. 조금만 견디면 나아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다가, 하루는 '아, 완전 짜증 나.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이 놈의 반깁스를 2주만 하면 낫는 게 맞기는 한 거야? 저 의사 혹시 돌팔이 아니야?' 하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달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겁니다. 원래의 난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인간이었다는 것을요. 좀 더 편하게 살아보려고, 어떻게든 상처를 덜 입어보려고, 자기 암시로 스스로를 속이고 힘든 상황을 회피하고 좋은 사람인 척해왔다는 것을요. 정말 놀라운 건 그렇게 해오는 동안 스스로도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됐다는 겁니다. 자기 암시의 폐해가 이렇게나 큽니다.ㅠ.ㅠ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본성이 드러난다더니 저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뭐, 그래도 실망하진 않으렵니다. 세상에 완벽하게 착하거나 완벽하게 나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저 또한 조금은 착하고 조금은 나쁜 인간일 테고, 그건 어떤 의미에서 평범한 인간이라는 증거일 테니 이런 저 자신을 긍정하며 받아들이려고요. 따지고 보면 다리 깁스가 벌써 4번째인데, 이제야 이런 깨달음에 이르다니 그것도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와 각성은 '조금씩, 천천히' 쌓이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득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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