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아빠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우리를 떠나는 아빠의 뒷모습도 아니고 눈물을 보이며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아빠도 아니며 엄마에게 아무렇지 않게 모진 말을 하던 아빠도 아니고 서슬 퍼런 눈으로 나를 보며 이제 너는 내 딸이 아니다. 하는 아빠도 아니다. 다만 이 기억들은 언제나 이름 모를 열매를 따먹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생각난 뒤에 하나씩 하나씩 떠오를 뿐이다. 푸른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오순도순 앉아있는 네 식구. 엄마는 과일을 깎고, 나는 동생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다가도 아빠를 보면 여지없이 달려가 아빠의 손에 든 열매가 뭔지 궁금해하던 기억. 그게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그리고.. 그리고는 모르겠다.
위암판정을 받은 뒤 초기 3-5년은 생존율이 높지만, 그 뒤로는 위암초기이던 말기이던 생존율은 현저히 낮아진다고 했다. 아빤 스스로 자신의 시한부를 3년 정도로 단정을 지은 것 같았다. '오 년살면 많이 산건가?' 하며, 한 손엔 약봉지를 쥐곤 다른 한 손으로는 달력을 가리키며 다음 병원 방문 날짜를 살피고 있는 아빠의 얼굴에 아빠가 저질렀던 모든 만행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잘 살고 있었으면 했는데, 평생을 안 볼 것처럼 살다가 10년 만에 만난 게 암에 걸려서라니. 그러나 나와 아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의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 위에 소금이 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예전처럼, 내가 10살 아빠가 40살이었을 때처럼 행동하고 말을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