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매 맹모삼천지교를 재해석하다.
토요일 오후 삼남매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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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는 탔지만, 배려는 못 탔다'편에서 말했듯이 아직 우리 집에는 지역상품권이 쌓여있다.
2번째 시장 나들이지만 둥이들은 낯선 풍경에 고개를 연신 돌려 된다. 지난번엔 유모차를 밀고 갔지만, 오늘은 차를 타고 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유모차와 자동차 사이엔 부모의 피곤함이 약 2배는 차이가 난다.
시장 입구의 과일가게에서 아내는 수박과 참외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길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장 특유의 왁자지껄함에 쌍둥이는 다소 긴장한 눈빛으로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묻는다.
“딸 둘에 아들 하나?”
“네, 둘째 셋째는 남매쌍둥이예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 눈이 반짝 빛난다.
“이야~ 200점이네 200점! 딸이 없으면 안사람이 외로워해. 딸은 무조건 있어야 해.”
“난 다 아들이라… 허허허.”
갑작스러운 주제 전개에 나는 ‘고맙습니다’라고만 말했다.
할아버지는 지갑을 꺼내시더니 1,000원씩 삼남매에게 나눠주시며,
“과자 사 먹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그러곤 연신 미소를 띠신다.
이유 없는 호의에 사양은 예의가 아니지 싶어, 아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시키며 받았다.
그 순간 나는 문득 떠올랐다.
맹모삼천지교.
맹자의 어머니가 공동묘지 → 시장 → 서당 근처로 세 번이나 이사한 이야기이다. 아이를 키울 때 환경이 중요한 점을 강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시장은 두 번째 정착지였다. 사람 냄새나는 곳, 살아있는 경제교육의 현장, 그러나 교육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공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우리 아이들은 시장에서 많은 걸 배웠다.
먼저, 아이들은 오늘 '소리'를 배웠다.
"성주참외 10개 만원!, 설탕덩어리 수박 만오천원......"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는
우리 삼남매에겐 "위협적인 괴성"에 가까웠던 모양이다.
셋 다 동시에 "집에 가자"고 울상이다. 낯선 소리와 많은 인파가 몰린 상황은 아이들에게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위기상황이나 민주주의 꽃 선거 때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집회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삼남매는 여러 번 시장에서 이런 상황을 겪으면 두려움보다는 그래서 참외가 다른 가게보다 싱싱하고 싼 거야. 비싼 거야. 살펴보게 되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또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난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를 느끼는 동시에, 삼남매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따뜻한 관심을 받는 경험을 하였다. 삼남매는 돈보다 더 귀한 '진심'이라는 호의를 직접 체험했다.
맹자 어머니는 아이가 장례 놀이를 따라 하며 죽음을 흉내 낼 때,
교육에 좋지 않다 판단하고 시장으로 이사했고 다시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공동묘지 근처에서 죽음을 보고 삶에 소중함과 죽음의 의미를 찾고, 시장에서 삶의 치열함과 여러 인간 군상을 보고, 서당에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배우고 지혜를 익히지 않았을까. 유아기에 경험하는 자극은 뉴런의 생존과 연결된다. 자극이 없는 뉴런은 사멸하고, 사용되는 회로만 살아남는다. 다양한 경험은 결국 더 튼튼한 인지적 기반이 되는 배경지식이(schemas)이 된다.
그러니 나는 아이들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낯선 사람과의 접촉을 조심스러워하는 그 모습이 좋다.
그건 ‘배우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생각해 보면,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을 떠났지만, 나는 오늘 시장에서 '교육의 현장'을 목격했다.
내 아이들이 ‘서당’에 도달하기까지, 이 시장은 꽤 괜찮은 경유지다.
크고 작은 자극과 소란 속에서 세상을 조금 더 느끼고 배우는 장소니까.
오늘도 맹모는 시장에 다녀온 후로 이젠 무엇을 사느냐보다, 삼남매가 무엇을 겪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음번 시장 나들이에서는 어떤 일을 겪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