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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딸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어느 날의 기록

부끄러움 뒤에 숨은 마음: 난 괜찮은 사람일까?

by 담연 이주원

https://brunch.co.kr/@tnlfl20/135

얼마 전부터 다온이는 두 발 자전거에 푹 빠졌다. 자전거를 정비한 후로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자전거를 타러 달려간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은 평화로운 일요일 오후였다.
나는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3호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1호 다온이는 자전거를, 2호는 킥보드를 타며 놀고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다온이가 다쳐서 집에 왔어. 얼른 애들 데리고 올라와.”
심장이 철렁했다.

집에 도착하니, 다온이 오른쪽 뺨에 긁힌 자국이 있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니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픈 것보다, 얼굴에 생긴 상처가 더 속상한 눈치였다.


아내는 내가 도서관에만 있었다며 속상한 마음에 나에게 한마디 했고, 나는 다온이 몸을 여기저기 살피며 더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아내 잔소리에서도 탈출하고 다온이 기분 전환도 해줄 겸 편의점에 가자고 했다.

삼남매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 이웃 주민이 탄 순간 다온이가 자신의 상처를 손으로 가렸다.
나는 순간, 아이가 상처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상처는 곧 나을 거야. 약 잘 바르면 금방 깨끗해질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다음날 월요일.
나는 이른 오전부터 일이 있어 새벽에 집을 나섰고, 삼남매는 아버지가 등교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1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나 학교 가기 싫어.”
당황스러웠지만, 주변에 동료들이 많아서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어?”
“그냥… 학교 가기 싫어. 안 가면 안 돼?”

아차 싶었다.
얼굴 상처. 친구들을 만나는 게 부끄럽고 그 상황이 두려운 거였다.
“얼굴 상처 때문에 그런 거야?”
“…응.”
아이는 점점 더 울먹였다.

이럴 땐 야단도, 설득도 소용없다. 조용히 스스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올 때까지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

조금은 감정을 추스른 투로 "아빠 듣고 있어." 확인한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 대신 오후 수영장 갈 건지는 네가 결정해. 할아버지께 얘기해 놓을게.”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아빠, 나 얼굴 상처가 너무 부끄러워.”

그 말은, 그냥 외모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 전체가 흔들린다는 신호였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친구들도 다온이 상처 보고 걱정해 줄 거야. 이상하게 보진 않을 거야. 아마 신경도 쓰지 않는 친구도 많을 걸. 금방 사라질 상처가 너를 바꾸진 않아. 넌 여전히 이쁜 다온이야.
또 침묵이 흘렀다.
나는 제안했다.
“그럼,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할아버지랑 버스 타고 천천히 학교 가는 건 어때? 선생님께는 늦는다고 전화해 놓을게.”

잠시 후, 다온이는 “알았어.”라고 답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1호는 잘 이겨내고 학교에 등교했을 거라 믿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교실에 들어갔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며칠 뒤, 다온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 암기도 잘 못하고 공부가 어려워.”

공부가 어렵다는 말보다 재미있다는 말을 더 많이 하던 아이가 특별한 사건도 없었는데 자신을 암기도 못하고 공부도 잘 못하는 아이처럼 자신감 없는 말을 한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흔들리니, 학업 자존감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존감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
신체적 자존감, 외모 자존감, 학업 자존감, 관계 자존감, 사회적 자존감 등 여러 조각이 있고 이 조각들을 통합하면서 자존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아이마다, 나이마다 그 여러 조각의 자존감이 의미하는 ‘가중치’는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초등 1학년에게는 외모나 친구 관계에 대한 자존감이 크게 영향을 준다. 이 중 하나가 흔들리면 다른 영역도 덜컥 내려앉는다.


이럴 땐 아이의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 부분,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 그리고 그 나이 그 상황에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부모가 구체적으로 언어화해서 칭찬과 격려를 해줘야 한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부족한 부분만 지적하고 부끄러워하는 아이 마음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며 다그치면 자존감은 내려간다.

내려간 자존감은 스스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모습도 어느새 사라지고 결국 “나는 못났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 "난 잘하는 게 없어"라고 스스로를 규정해 버린다.


그 일이 있고 3일이 지난 아침, 나는 다온이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혹시 상처에 대해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도 안 물어봤고, 관심도 없었어.”
“그래. 친구들은 상처가 나도 다온이를 여전히 이전과 똑같이 생각하는 거야. 친절하고, 인사 잘하고, 웃음이 예쁜 다온이로.”

다온이 얼굴에 미소개 번진다. 그 미소가 ‘회복’이기를 기대해 본다.


자존감은 혈압과 같다. 지나치게 높아도, 낮아도 문제다. 하지만 잘 관리하면, 일시적인 흔들림은 곧 안정된다.

이번 일은 다온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자존감을 지켜주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건 결국 지켜봐 주는 어른의 시선이다.




자녀 자존감, 이렇게 지켜주세요


심리전문가 아빠가 권하는 자존감 대화법

1. 외모에 대한 부끄러움, 감정부터 받아주기

X “그 정도는 괜찮아”, “그게 뭐 부끄럽다고 그래”

O “그랬구나, 얼굴 상처 때문에 속상했겠다.”

감정을 공감해 주면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다룰 힘을 얻습니다.


2. ‘상처’ 대신 ‘의미’에 주목하게 하기

“상처는 넘어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두 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증거야. 실패 없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단다.

자존감이 흔들릴 때, 경험에 담긴 ‘의미’를 이야기로 바꾸어 주세요.

3. 자존감의 다른 영역을 다루기

“다온이는 친구한테 먼저 인사 잘하네. 친구들이 다온이를 따뜻한 친구라고 기억할 거야.”

외모 자존감이 흔들릴 때, 관계적 자존감 학구적 자존감 사회적 자존감 운동 자존감 등을 칭찬해서 자존감 균형을 잡아주세요.

4. 질문보다 공감, 판단보다 기다림

아이가 말문을 닫을 때는 “말해봐” 대신, “아빠는 여기 있어”

침묵을 기다려주고 존중해 주면 어떨까요? 자존감 회복의 첫 번째는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따뜻한 부모와 함께.


5. 믿음은 ‘회복탄력성’ 발현시킵니다.

모든 자존감 하위영역이 항상 높을 수 없습니다. 항상 낮지도 않구요. 순간의 ‘낮음’보다 중요한 건 낮아졌을 때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힘입니다.


부모는 옆에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든든하게 기다려주는 소나무 같은 존재일 때 아이는 자랍니다.


아이 자존감은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각 파트(외모, 신체, 공부, 관계, 감정, 사회 등)가 조화를 이루며 들려오는 ‘아름다운 메아리’입니다.

이번 다온이의 작은 상처는 그 자존감 교향곡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한 음표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음 하나가 전체 음악을 망치진 않습니다.

다만, 듣는 이의 귀와 마음이 다정하면,

그 음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됩니다.

이 글이, 자녀의 높은 자존감을 품어주고 싶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온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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