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삼남매는 기뻐하고 나는 아쉬워하고
냉장고가 멈췄다.
고장 한 번 없이 20년 간 우리 부부와 함께했던 냉장고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결혼 초 장만했던 오래된 친구가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부부의 젊은 시절을 함께했고, 수많은 음식과 재료를 품어줬던 친구가 떠나 나는 아쉽다.
그런데 아내는 미소를 짓는다. “이젠 바꿀 때 됐지.” 이렇게 말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이사를 할 때마다 지긋지긋하게 고장 나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던 아내모습이 떠오른다.
삼남매도 엄마 곁에서 신났다.
“새 냉장고 사는 거야?”
환한 얼굴로 말한다.
그 순간, 나만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쓸쓸함이 몰려온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오래된 것을 아쉬워하는 감각이 없다.
음식을 아끼는 마음도 아직은 서툴다.
과자 봉지를 열고 몇 개 집어먹고는 아무 곳이나 던져 놓기도 하고,
수박도 붉은 부분만 쏙쏙 파먹어서 순백에 수박 살은 볼 수가 없다.
“지구가 아파.” 아니 "우주가 아파."
그렇게 말하면 한동안은 신경 쓰는 척 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결국 먹다 남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내 앞으로 온다.
2호 한준이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아빠는 왜 남은 것만 먹어?”
나도 가끔은 묻고 싶다. “왜 이렇게 자꾸 남기는 걸까.”
냉장고는 제 할 일을 20년이나 해줬는데,
아이들에게 그 긴 시간의 무게는 아직 낯설다.
이런 마음이 든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물건을 아끼고, 먹을 것을 남기지 않고, 돈의 가치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을까?"
삼남매 발달 연령에 맞는 소비·경제교육 아이디어를 끄적여 본다.
1. ‘고마워’ 물건과 대화하기
– 아이들과 함께 냉장고에 “수고했어”라고 말해본다.
– 냉장고에 붙은 자석, 스티커, 사진 등을 떼며 “이건 우리가 여기서 뭘 먹고, 어떻게 컸는지를 기억하는 물건이야”라고 설명한다.
오래 사용해야 하는 물건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삼남매도 대화하는 놀이를 한다.
물건과 정서적 연결이 생기면 물건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함께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지 않을까?
2. ‘먹을 만큼만 덜어먹기’ 연습
– 아이 전용 그릇을 주고, 먹을 만큼만 덜어먹는 놀이를 해본다.
– 남기면 ‘음식 구출 대작전’으로 이름 붙여서 남긴 음식을 예쁘게 다시 플레이팅 해준다.
자기 조절 능력 + 음식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되지 않을까?
3. ‘물건 생일’ 맞히기 게임
– 집안 물건을 보여주며 “이건 몇 살일까?” 퀴즈.
– 맞히면 스티커, 틀려도 “이건 아빠가 엄청 오래 쓴 거래” 식으로 공유.
오래된 것의 가치와 시간감각을 놀이처럼 배우지 않을까?
4. ‘카드 긁기 놀이’와 ‘마음저금통’
– 가족 마트 놀이에서 장난감 카드로 결제하면, 사용 횟수에 따라 ‘미션’이 따라온다.
– 예: “카드로 과자를 샀으니 엄마 심부름 한 번!”
– 또는 ‘사고 싶은 걸 모으는 마음저금통’ 만들기: 사고 싶은 물건의 사진을 붙여놓고 동전이나 스티커를 모으는 방식.
돈 = 행동의 대가, 카드 = 책임이 따른다는 개념을 심어 줄 수 있지 않을까?
5. ‘고쳐 쓰기 챌린지’
– 망가진 장난감, 색연필, 책 등을 함께 고쳐보는 시간.
– “아빠는 이거 테이프로 붙여서 3년 더 썼지~” 같은 이야기 덧붙이기.
이 활동으로 수리와 재사용의 즐거움을 체득하길 바래본다.
냉장고는 멈췄지만, 아이들의 소비 감각은 아직 돌아가는 중이다.
그 감각이 '갖고 싶은 걸 바로 사는 소비'가 아니라
‘필요한 걸 감사히 쓰는 소비’로 천천히 조율되길 바란다.
똑똑 두드리면 냉장고 안이 보이는 최신 냉장고가 옆에 있지만,
나는 여전히 지난 20년에 추억을 담은 냉장고 친구가 아쉽다.
아마도, 물건에도 인생이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이 글을 본 1호 다온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닌데 기쁘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는데 엄마한테 말했는데"
그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