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100일 1편
삼남매를 키우며 나는 자주 ‘삶의 방향’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그중에서도 올 여름, 첫째 다온이가 건넨 한마디는 내 삶의 습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아빠, 담배 끊어.”
말은 가벼웠지만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내게 와 닿는 울림은 컸다.
그날 이후 나는 30년 가까운 흡연의 역사를 접기로 했다.
그리고 금연 100일이 지났다.
8월9일 토요일부터였으니 정확하게는 111일째이다.
이 글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금연 111일 간의 여정을 심리학자이자 삼남매 아빠의 시각에서 담담히 적어보려 한다.
올해 여름방학이 막 시작될 무렵, 다온이는 학교에서 금연교육을 듣고 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책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아빠, 담배 끊어.”
딱 세 글자씩, 두 번.
마치 선생님이 시킨 멘트처럼 정확했는데, 또박또박 이어지는 목소리 안에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잠깐 멈춰 섰다.
“아빠… 몸에 안 좋은 거 피우면 안 돼.”
이 말은 두 번째 공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삼남매가 커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한껏 들었다.
저녁에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아내는 태연하게 말했다.
“다온이가 금연 포스터를 보여주면서 아빠 담배 피지. 아빠 금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담배 끊어보지.”
라며 무심하게 금연을 권한다.
'자신은 금연에 대한 기대를 접었지만 딸이 금연하라고 하니 한번 생각해봐.' 이런 마음이 전해진다.
아이들 앞에서 흡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넘어서면 안 된 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담배냄새는 숨길 재간이 없다.
그날 이후,
담배냄새를 맡은 다온이 표정에 '아빠 금연해'라는 말풍선이 계속 따라다녔다.
돌이켜보면, 금연을 해야겠다는 작은 징후는 몇 년 전부터 쌓였다.
흡연 부스는 빠르게 줄어들고,
회사 건물 뒤편 골목에 숨어서 피우는 날이 늘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얼굴까지 내려쓰고 바람을 피하며 피웠다.
그러다 문득, 그 모습이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박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피워야 하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장면이 있다.
올 초, 강남에서 컨설팅이 끝나고 바삐 걸어가던 중 어디서든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그때 나는 건물들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한 대를 피웠다.
바람은 세고, 손은 시렸고, 공기는 텁텁했다.
담배 필 곳을 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조금… 비참했다.
그 초라함과 다온이의 말이 함께 떠올랐다.
흡연 시간은 내 하루에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시간도 건강도 돈도
아이가 건넨 이 한마디가
그동안 “언젠가는 끊어야지”라고 미루던 내 결심을
“지금 당장 끊자”로 바꿔버렸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라 정체성의 호출이었다.
“애 셋을 둔 아빠”라는 정체성이 “흡연자”라는 정체성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결심은 깔끔했지만, 그 다음은 깨끗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금연 초기 30일은 거의 전쟁이었다.
업무량이 많고 스트레스가 올려치기하는 날이면 자동으로 ‘흡연 루틴’이 재생되었다.
손끝은 허전했고, 입술은 심심했고, 마음은 뭔가를 찾았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다른 행동’을 집어넣었다.
물을 한 컵 마시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크게 틀어보고
집안일을 갑자기 시작하고
일을 몰아치고
사탕 하나 입에 넣고
다온이·한준·채린이 얼굴을 떠올렸다
이 대체 행동들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담배 생각이 켜질 때 그 자리에 ‘다른 버튼’을 눌렀다.
어느 순간, 그 버튼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뇌가 “담배 → 안정” 대신 “다른 행동 → 안정”을 새로운 회로로 받아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연 초기 몸은 더욱 정직하게 반응했다.
비염이 줄었고,
숨이 깊어졌고,
맛이 살아났고,
기침이 줄었고,
피곤함이 덜했고,
아침이 조금 더 맑았다.
몸이 이렇게 바로 반응할 줄 몰랐다.
흡연이 몸을 얼마나 무겁게 하는지, 금연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변화는 ‘시간’이었다.
나는 거의 한 시간에 한 대씩 피웠는데
그 습관이 사라지자 하루가 길어졌다.
일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고,
회복력도 좋아졌고,
몰입 시간이 길어졌다.
삶 전체의 리듬이 비로소 정상을 찾은 느낌이었다.
‘담배는 내게 시간을 주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시간을 계속 가져가고 있었다.’
지금도 담배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진다.
30년 가까이 몸에 밴 향이니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제 그 냄새가 유혹이 아니라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금연의 기준을 다시 세운 문장이 있다.
2편에서 보건소와 있었던 에피소드와 금연 과정을 좀더 자세히 적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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