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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눈 Jun 30. 2017

시작의 이유




눈은 뜨는 둥 마는 둥, 엄마가 된장국에 말아준 밥을 꾸역꾸역 떠먹으며 아침잠을 깰 때는 7시쯤. 그쯤 내 앞을 쓰윽- 지나가는 장면은 흙물과 빗물을 뚝뚝 떨구며 화장실로 향하시는 아부지의 모습. 새벽에 논에 갔다가 장맛비와 씨름하며 돌아와서 질퍽대는 장화를 마당에서 벗어 놓고 난 뒤였을 거다. 나는 등교 준비, 아니 잠깨는데 바빴던 7시. 아부지의 노동은 일터에 나가기 전, 이미 논에 나가 시작되었다.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텃밭에 간다. 북한산 둘레길 따라 30분 정도 걸으면 3평 텃밭에 발 닿는다. 4월 초부터 감자, 완두콩, 아욱과 뿔시금치를 연이어 심었다. 먹기 좋게 무섭게 자라는 외래종이나 종묘상에서 파는 모종 옮겨다 심지 않고, 흙 속에 사는 유기물과 어우러지도록 토종씨앗으로 곧뿌렸다. 귀농해서 토종씨앗으로 먼저 농사 짓던 형님들의 수고와 덕을 거저 받아 누렸다. 밭에서 흙 매만지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반갑기 시작할 쯤, 어렸을 때 그 아침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는 늘 밤 늦게 집에 들어오셨어도 해가 뜨기 전에 논에 나가셨었다. 여름날이면 얼굴에 흰 눈동자와 흰 치아밖에 안보이던 까맣게 탄 얼굴. 장맛비에 벼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버텨내며 볏짚 묶어냈을 손과 발. 바람에 흥청거리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이미 벼와 한 몸이었을 아부지가 떠올랐다. 거뭇한 새벽날, 태풍 속 논 한가운데서 아부지는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을까.




흰 꽃 피운다던 완두콩 씨앗, 맹추네 농장에서 농사 짓는 언니께 받은 씨앗들. 4월 6일 심었더니, 일주일 남짓 지난 4월 14일에 흙 비집고 올라온 새싹으로 다시 만났다. 완전히 묻어야 중력을 거슬러 피어난다.



2012년도에 대학을 졸업하고 1년간 기독교 비영리단체에서, 3년간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가로 일했다. 필요한 일이라면 재정은 당연히 따라오는 일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게 1년, 필요한 일을 위해 주도적으로 재정을 꾸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게 3년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바라는 지향점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 재정을 꾸릴까, 고민했던 시간은 낯설고 새로웠다. 그 과정을 지나며 내가 버는 돈이 어디, 누구로부터 시작되는지를 먼저 살피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그만한 돈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열심히 일만 하면 어디선가 돈이 나오겠지, 하며 분절적으로 노동하지 않을 수 있었고 돈을 버는 것과 시간을 버는 것이 대치된다는 걸 알았다. 동시에 돈을 벌어 소비하는 삶보다, 시간을 벌어 생산하는 삶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지향이 있는 한편 몸의 욕망이 바뀌기란 어려웠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진되어 집에 돌아오면 헛헛한 몸과 마음의 허기를 곧장 먹는 것이나, 책이나 영상물을 보는 것으로 풀곤 했다. 밖에서 사람들과 만날 때는 선한 것, 건강한 것을 이야기하지만 돌아와 혼자 있을 때는 너저분한 방, 저렴하고 자극적인 음식과 볼거리로 내 몸을 채우는 게 일상이었다. 촘촘하게 활동하고 돌아온 집에서는 철저하게 혼자의 영역을 확보하며 고립을 연출하고 외로움을 자족했다. 안과 밖, 말과 몸의 괴리가 분명하다 느꼈지만 멈춰 돌아보고 거스를 여유와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2013-2014년 마포구 성산동에서, 2015년 종로구 창신동에서 마을활동을 했다. 그리고 2015년 5월, 창신동에서 활동할 때 강북 인수마을로 이사를 왔다. 5명의 비혼 여성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생활과 분리된 지역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뒤로는 더 이상 유보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활동 아닌 생활, 임노동으로 만나는 관계보다 일상의 동선에서 자연스레 마주치는 관계를 기대하며 2016년 1월에 창신동에서 하던 활동을 정리했다.     


활동을 그만둔 뒤 실업급여를 받으며 백수로 보내던 5개월의 시간동안, 마을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들이 있었다. 마을 대안학교에서 종이접기 수업으로 1,2학년 학생들을 만나고,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씨실과 날실 엮는 직조 수업으로 7세 아이들과 만났다. 주어진 순간에 몰입하고 모든 것을 놀이로 승화해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신이 났다. 수업 외에도 마을 어귀, 골목 곳곳에서 우연히 아이들을 만나고 눈을 마주쳤던 시간이 큰 힘이 되었다. 언어로 정리된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 자책감 때문에 자기연민에 빠져 한없이 침잠할 때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아이들의 눈빛, 그 생기가 주는 품이 참 컸다. 마을에 선배들이 먼저 고민하고 공부한 흔적 켜켜히 쌓인 오래된 책들 모아둔 서원(도서관)이 있는데, 기존에 쓰던 공간을 이사하면서 3천권 정도의 책을 옮긴 뒤에, 다시 책을 정리할 필요가 생긴적이 있었다. 필요한 책을 검색해서 서가에서 찾기 쉽도록 주제 별로 책을 분류하고 책 목록을 작성하는 울력을 마을 친구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마감도 없었고, 마음 낸 친구들마다 낼 수 있는 품도 달랐기에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각자 낼 수 있는 품만큼 기꺼이 또 즐겁게 책들을 정리했다. 오래된 책 사이에 선배들이 주고받은 옛스런(?) 문장들, 느낌표와 물음표, 행간의 여백과 다짐들을 발견하며 쏠쏠한 감동과 재미도 보았다.      




손으로 꼼지락 거리며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배우고 깨닫고 그만큼 바라는 관념이 들어날수록, 몸 있는 곳에 마음 두기가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그런 내게 아이들의 손짓, 발짓은 큰 배움이다. 순간에 집중하는 힘, 아이들이 몰입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 그 곁에서 곁불 쬔 시간들이 소중하다.



물론 마을에서 지내며 늘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 기질이나 성향과 상반되는 사람과 만났을 때는 마주침 자체가 버거워 피하고 싶기도 했다. "저 표현은 이 뜻일까?" 담백하게 받고 묻기보다 추측하고 지레짐작하며 나중 대화를 통해 상대를 대상화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되기도 했다.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고정된 답은 없는데도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는 삶을 ‘적응해갈 어떤 것’, 또는 ‘배워서 습득할 어떤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돌아보면 마을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옆에 있는 동무 얼굴 통해 내 모습 비추며, 더 행복한 삶 살고 싶어 발 딛은 것이었는데, 말이다.      


한 집에서 지내는 언니, 동생과 최근에 <Detachment, 2011>라는 영화를 봤다. “우린 계속 실패했어요. 계속 실패하죠.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가 낙담하고 만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패한 거예요.” 라고 말하는 헨리의 인터뷰 장면 뒤로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각자의 어두운 세계를 보듬고 껴안는 새로운 가족, 헨리와 에리카의 포옹 장면이다. 헨리가 누군가의 질문에 언어로 자신의 고통어린 삶을 회고하는데, 그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는 신이야말로 명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언어보다 사건, 명제보다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된다면 과장일까. 여전히 혼자 선택하고 혼자 고민하는데 익숙하지만, 마을에서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친구들이 빽빽한 틈새를 벌리고 들어와 환기시켜준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을 일군다. 덕분에, 갈 길이 멀지만, 갈 힘이 난다.     


마을에서 생활하는 삶을 주축으로, 하루의 반나절은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고 반나절은 비정기적인 재택근무(녹취작업)를 하고 있다. 처음 이 기금에 대한 제안을 받고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50만원*12개월을 셈하니 아직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을 생각보다 빠르게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 오래전부터 시골에서의 삶을 꿈꿔왔지만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밀린 학자금을 꾸준히 갚으며 귀촌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찰나였기에 그날이 조금 더 빨리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한편 기본소득보다도 기본소득적 관계를 이미 채우던 마을에서의 생활을 마을 밖의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 이 제안을 해준 함께일하는재단 노동조합을 빗댄 사회에 대한 고마운 생각,이었다.     


다만 여전히 적지 않은 걱정도 남아있다. 기금을 받으며 적어갈 문장들이 기록을 위한 기록이 되지 않도록, 애써 삶을 연출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붙드는 게 스스로에게 남은 우려이자 과제다. 텃밭 오가며 만나는 밭 생명들의 이야기, 인문학 책 읽으며 새롭게 발견한 통찰들, 재가요양보호사로 임노동하고 어르신과 교감하며 생기는 사건들, 이 모든 일상을 받치고 있는 마을에서의 관계와 생활이 앞으로의 글에 버무려질 거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대해 경계해야겠다. 글감을 찾기 위해 촉을 세우는 일이 없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오롯이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어디여?”

            “밭에 가.”

            “뭐다러?”

            “이것저것 심었자네.”

            “와따-. 뭐다러 대학갔으까? 해남 내려와서 나 따라 농사나 짓제?”

            “그라게 말이네. 얼른 가서 아빠한테 배워야 쓴디..”

            “왐마... 머리 아퍼 불구마이...”         

 


서울로 대학 보낸 막내딸이 당신 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정한 일을 하며, (아부지는 재가요양 일을 하는지는 아직 모르신다. 어무이랑 이야기 나누며 지금은 비밀로 해두자, 했다. 그런 어무이는 할머니와 만나며 즐거워하고 보람 느끼는 나를 걱정 반, 호기심 반의 눈초리로 보신다.) 이제는 농사까지 한다니, 그야말로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아부지가 임금으로 환산되는 노동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 시간과 자기 이유를 갖고 보냈던 그 새벽, 세차게 비 내리는 하늘과 물컹한 땅 사이에서 볏짚 묶으며 버텼던 그 시간이야말로 당신의 맷집을 키워낸 힘은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 이유를 갖고, 자기 시간을 확보할 몸과 마음의 여유. 그것이 당신이 일상을 밀고 갈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야 하는 일로 달려가는 일상은 하루를 버겁게 한다. 해야 하는 일 전에 하고 싶은 일, 생명의 욕망에 닿은 일, 교감하고 관계 맺는 일,이 필요하다. 그 틈새를 벌일 여유를 일상을 밀고 가는 힘, 기금을 통해 상상해본다. 나 또한 한참 미진하지만, 작은 3평 밭에서 그 소소한 밭생명들의 변화를 발견하려 애쓴다. 애쓰는 시간을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생산하려 또는 의미를 발견하려 아등바등하는 나도 주어진 일상에 그저 고마워할 줄 알고, 몸 있는 곳에 마음 두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 기대로 시작의 이유를 가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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