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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Oct 17. 2017

퇴계의 발자취 좇아 오르는 유가의 명산

경북 봉화 청량산

낙동강 가에 우뚝 솟은 청량산(870m)은 자연경관이 수려해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불렸다. 택리지를 쓴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의 하나로 청량산을 꼽았다. 그런 청량산을 지극히 사랑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이다.


퇴계는 청량산을 ‘우리 집안의 산’이라는 뜻에서 오가산(吾家山)이라 불렀고, 백암사를 지어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 청량산 봉우리를 중국의 무이산에 빗대 ‘육육봉’이라 명한 이도 퇴계다. 청량산에는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씨 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그리고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조선후기 학자인 해은 강필효는 봉화군 명호면에서 안동시 도산면에 이르는 아홉 굽이 물길을 대명산구곡이라 이름 짓고 퇴계를 그리는 마음에서 청량산을 5곡으로 삼기도 했다. 청량산은 1982년 8월에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에 청량사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공원 일부가 국가지정 문화재 명승 23호에 이름을 올렸다.


다양한 루트로 만나는 청량산
청량사


청량산은 편의상 청량산도립공원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을 외청량산, 왼쪽을 내청량산이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청량산이라고 말하는 곳은 내청량산이다. 청량산 육육봉 가운데 최고봉인 장인봉을 포함해 탁립봉·선학봉·경일봉·금탑봉·자란봉·자소봉·연적봉·연화봉·탁필봉·향로봉 등 열한 개 봉우리를 내청량산이 품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도 내청량산 연화봉 아래 있다. 열두 봉우리 가운데 축융봉(845m)만 외청량산에 외따로 솟았다.


청량산은 5개 코스를 통해 오를 수 있다. 내·외청량산을 아우르는 12.7km의 종주코스에서 청량사까지만 다녀오는 2km 내외의 약식코스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알찬 코스는 입석에서 장인봉을 거쳐 안내소로 내려오는 2코스. 6.5km의 짧지 않은 거리지만 축융봉과 탁립봉, 경일봉을 뺀 나머지 봉우리를 두루 만날 수 있다. 청량산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을 조망하며 산행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등산로에 샛길이 많아 코스 수정도 수월하다.


풍형대, 김생굴 등 볼거리 풍성
청량산 골짜기를 파고드는 안개


입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짧은 나무계단을 오르면 바로 숲길이다. 가을빛 곱게 내려앉은 오솔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산허리를 타고 도는 길이고 보니 몇 걸음만 옮겨도 발아래로 아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스멀스멀 청량산 골짜기를 파고드는 안개가 멋스럽다.


청량사 오층석탑


입석 들머리에서 200m 남짓 걸으면 청량사와 응진전으로 방향이 나뉘는 갈림길에 닿는다. 어느 쪽으로 길을 잡아도 장인봉에 오를 수 있지만, 기왕이면 응진전 방향을 택해 오르는 게 낫다. 최치원이 독서를 즐겼다는 풍혈대와 서성(書聖)으로 불린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굴 그리고 자소봉과 문필봉 등이 모두 이 코스에 포함된다. 무엇보다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향로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연적봉을 놓치기는 정말 아깝다. 청량산의 최고 뷰 포인트를 꼽으라면 연적봉이 단연 으뜸이다.


응진전
가을빛 곱게 물든 금탑봉

청량사를 발아래 두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면 그 끝에 응진전이 있다. 금탑봉 아래 다소곳이 자리한 응진전은 청량사의 부속 암자로 법당에는 삼존불, 나한상과 함께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 상을 모셨다. 축융봉 아래 공민왕당이 마주보이는 자리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몽진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기리는 백중제는 6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김생굴


응진전을 돌아 나오면 풍혈대 아래에서 아담한 약수터를 만난다. 이름하여 ‘총명수’. 좁은 바위틈에서 솟는 이 물은 최치원이 마시고 총명해졌다는, 그래서 예로부터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이나 청량산에 유람 온 이들이 반드시 들러 마시곤 했다는 물이다. 시원한 총명수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500m쯤 걸으면 김생굴이다. 통일신라시대 서예가였던 김생은 절벽 아래 새집처럼 움푹 패인 이곳에서 10년 동안 글씨 공부를 했다고 전한다.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김생필법’은 그렇게 태어났다. 퇴계는 김생을 일러 ‘천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솟아난 이 몸일세’라고 극찬했다. 9년 동안 글씨 공부를 하고 하산하려던 김생이 길쌈 매는 청량봉녀와 실력을 겨룬 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1년 더 글씨 공부를 했다는 김생과 청량봉녀 설화는 한석봉과 그 어머니 일화와 많이 닮았다.


책 읽듯 오르는 청량산 열두 봉우리
가을빛 완연한 청량산
연적봉에서 바라본 풍경


김생굴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능선에 오르는 마지막 깔딱 고개다. 김생굴에서 자소봉(840m)까지는 800m. 능선 위에 도깨비 뿔처럼 솟은 세 개의 봉우리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이 자소봉이다. 산등성이에 가지런히 솟은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은 봉우리라기보다는 거대한 바위에 가깝다. 탁필봉을 제외한 두 봉우리에는 철제계단이 설치돼 편안히 오를 수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들 봉우리 중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연적봉(846.2m)이다. 청량산에서 장인봉 다음으로 높은 연적봉은 퇴계 이황이 육육봉이라 명한 청량산 열두 봉우리 중 무려 여덟 봉우리, 아니 발을 딛고 선 연적봉까지 포함하면 아홉 봉우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청량산의 명물 구름다리와 축융봉으로 길게 이어지는 산성도 또렷이 보인다.


청량산 하늘다리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하늘다리를 지나면 장인봉이 성큼 다가선다. 산정에 오르는 동안 마주한 풍경이 워낙 출중했던 탓일까. 장인봉은 평범하다 못해 소박하게 느껴진다. 큼직한 정상석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 장인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든다. 공원 안내소에 이르는 3km 남짓의 하산 길은 대부분 암벽 사이를 비집고 내려서는 계단 구간이다. 배낭이 계단에 닿을 만큼 가파른 곳도 더러 만난다. 무척 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눈앞에 열린 멋진 풍경이 있어 발걸음만은 가볍다. 금강대 밑을 지나며 바라보는, 청량산을 휘감아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은 이 길이 건네는 최고의 선물이다.


장인봉 지나 만난 전망대에서 본 풍경
하산길 된비알
청량산 발목을 적시고 흐르는 낙동강
삼부자 소나무


청량산은 오르고 내리는 길의 분위기가 참 다르다. 책으로 따지면 소설과 교양서 정도의 차이랄까. 한 걸음 한 걸음 꼼꼼히 짚어야하는 오름길이 교양서라면, 호탕한 풍경이 펼쳐지는 내림길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닮았다. 퇴계 선생이 말한 ‘책 읽기가 산 유람과 같고 산 유람이 책 읽기와 같다’는 말의 의미를 이 길을 걸으며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본다. 책장을 넘기듯 천천히 옮기는 걸음걸음에서.


글 사진 정철훈 (여행작가)


산행 시 주의 사항
산행 시 계단을 오를 때는 모델 워킹이라고 부르는 타이거 스텝을 이용하면 한결 수월하다. 타이거 스텝은 호랑이처럼 발을 교차시켜 걷는 보행법으로 무게중심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 체력소모를 줄여줄 뿐 아니라 평소에 쓰지 않던 허벅지 바깥쪽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근육에 가해지는 부담도 덜 수 있다. 평지에서는 사용할 필요가 없고, 하산 시에는 절대 사용 금지다.


찾아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풍기IC → 가흥삼거리 봉화 방면 우회전 → 문정교차로 → 평은터널 → 옛고개삼거리 봉화 방면 좌회전 → 원천삼거리 도산서원 방면 우회전 → 녹전면사무소 → 도산면사무소 → 청량사도립공원 → 입석주차장 (청량산 산행 출발점)


주변 추천 맛집
청량산다래식당 : 산채비빔밥, 봉화군 명호면 광석길 32, 054-673-9005
청량산식당 : 산채비빔밥, 봉화군 명호면 광석길 46-4, 054-673-2560
청량산오시오숯불식육식당 : 솔잎돼지숯불구이, 봉화군 명호면 광석길 46-37, 054-673-9012


머물기 좋은 숙소
청량산모텔 : 봉화군 명호군 광석길 27, 054-674-2267
명호민박 : 봉화군 명호면 청량로 1233, 054-672-9198
들꽃피는펜션 :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27-1, 010-6331-1477


 주변 여행지
계서당 : 이몽룡 생가로 불리는 계서당은 조선 중기 문신인 계서 성이성(1595~1664)선생이 살던 곳이다. 성이성은 창녕 사람으로 남원 부사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 선생의 아들로 인조 5년(1627) 문과에 급제했다. 진주부사 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4번이나 어사로 등용되었으며, 근검과 청빈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봉화군 물야면 위치.
용소목 : 승천한 용의 전설을 간직한 용소목이는 재산천을 흘러온 물이 용가마를 몇 바퀴 휘감아 도는 모습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휘몰아치는 물살만큼 거대한 바위들가 멋스럽다. 밀가루 반죽을 멋대로 주물러 놓은 것 같은 용소 주변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봉화군 명호면 위치.


봉화군 맛집


봉화 춘향목이 키운 송이 맛의 진수, 용두집

용두식당은 봉화청정지역 춘양목에서 자란 산 송이로 메뉴를 내는 송이요리 전문식당이다.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용두식당에서는 송이 향을 잘 살린 송이돌솥밥과 송이구이가 유명하다. 청정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돌나물, 당귀, 참나물 등으로 만든 15가지에 이르는 밑반찬도 일품이다.

주소 : 경북 봉화군 봉화읍 다덕로 526-4

전화 : 054-673-3144

메뉴 : 송이돌솥밥 20,000원, 송이전골 25,000원,

주차 : 식당 앞 주차장 완비




송이 향이 가득한 건강 웰빙 밥상, 솔봉이네

솔봉이네 대표 메뉴는 송이돌솥밥다. 금방 지어낸 밥에 큼직한 송이가 듬뿍 들어간다. 송이전, 송이전골 등도 솔봉이네 식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 후식으로 나오는 송이차도 일품이다. 솔봉이네 식당에서는 봉화에서 난 송이만을 사용하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돌나물, 당귀무침 등도 모두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만 사용한다.

주소 :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천1길 76-1

전화 : 054-673-1090

메뉴 : 송이돌솥밥 15,000원, 송이전골 15,000원,

주차 : 식당 앞 주차장 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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