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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NP Aug 19. 2015

여행, 다시 쓰기 -군위 화산마을-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늘 아래 첫 동네, 군위 화산마을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늘 아래 첫 동네,

군위 화산마을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 4리는 일명 ‘화산마을’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화산(華山․828m) 자락에 자리해서 그리 부르는 것이지요. 군위의 특산품 중 최고로 꼽는 것이 고랭지에서 재배한 채소들인데, 800 고지에 자리한 이곳 마을에서 재배한 쌈배추와 상추도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화산마을의 자랑거리는 입맛 돋우는 고랭지 채소만 있지는 않습니다. 사진가들 사이에서 정읍의 옥정호, 강릉의 안반데기 등과 함께 운해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 화산마을이니까요. 특히 일교차가 심해지는 이즈음이면 갓산을 에둘러 피어오르는 운해가 장관을 이룹니다. 그 순간만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갓산도 구름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자그마한 섬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오늘은 틀린 모양입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요. 다음의 어느 날을 기약할 밖에요. 흔한 말로 아쉬움이 있어 다시 떠나올 수 있는 게 여행이니까요.


화산마을은 1962년 재건동 혹은 개간촌이라 불리던 마을입니다. 말 그대로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그 밭을 중심으로 마음이 형성된 것이지요. 초창기 정착민들은 정부로부터 19800㎡(6000평) 정도의 임야를 무상으로 지급받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지역의 산간마을이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화산마을도  그중 하나였던 셈입니다. 개간촌이 형성될 당시에는 모두 네 개의 마을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제법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세 개 마을은 인근 영천시의 감자골로 옮겨졌고, 지금은 한 개 마을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무리 둘러봐도 민가라고는 산비탈에 띄엄띄엄 들어앉은 10여 채뿐이네요. 상추밭 배추밭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시는 분들도 대부분 산 아래 마을에서 원정을 오 분들입니다.



화산마을이 세간에 알려진 건 화산 산성(華山山城․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때문입니다. 저 역시 화산산성을 찾아가는 길에 이곳 마을과 인연이 닿았으니까요. 화산산성은 화산마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해 있는데, 화수리에서 갑령을 잇는 28번 국도변에서 임도를 따라 7km 정도를 더 올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북문과 수구문 터만 남아있는 화산산성은 숙종 35년 병마절도사였던 윤숙에 의해 건설되었으나 축성 당시 흉년이 크게 드는 바람에 성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화산산성에서 돌아 나와 실핏줄처럼 이어진 고샅을 걷는 재미도 여간 아닙니다.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하면 최근 지은 마을회관 주위로는 제법 널찍한 주차공간도 있습니다. 마을 곳곳을 꼼꼼히 돌아볼 요량이라면 차는 이곳에 잠시 세워두시는 게 좋습니다.


화산마을은 고지대에 있는 만큼 시원스러운 풍광이 일품입니다. 그럴듯한 전망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을 어디에서든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갓산에서 멀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화산인 의성의 금성산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화산 앞에 우뚝 솟은 갓산을 가시산이라고도 부릅니다.


화산마을에서 시원스러운 풍광을 즐겼다면 인근 인각사와 학소대도 놓칠 수 없습니다. 군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들이니까요.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완성한 절로 알려진 인각사에는 일연선사의 부도탑인 보각국사정조지탑과 일연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보각국사비가 남아있습니다. 둘 다 보물 제428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학소대는 인각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해 있습니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수직 절벽이 인상적인 학소대는 여름철이면 군위는 물론 인근의 의성과 영천, 심지어는 대구에서까지 피서객이 몰려드는 소문난 피서지이기도 합니다. 군위는 또한 지난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유년기를 보내신 곳이기도 합니다. 5살 때 대구에서 군위로 이사 온 김수환 추기경은 소학교 5년 과정을 마치고,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할 때까지 이곳 군위에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글 사진 정철훈(여행작가)



화산마을과 함께한 50년 세월...
1962년 정착민으로 이곳 화산마을로 들어온 김준현(80) 할머니는 오늘도 상추밭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개간촌이 형성될 때 정부로부터 받은 땅이 있지만 20여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농사일은 그만 뒀다. 대신 남의 밭일을 도와주고 하루하루 일당을 받아 자식 넷을 키웠다. 하루 12시간,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할머니가 손에 쥐는 돈은 4만 원. 일당이 너무 적지 않냐는 물음에 김씨 할머니는 “20여 년 전에는 2천 원 받고 하루 종일 일했다”고 웃어 보인다. 당시에는 남자는 5천 원, 여자는 2천 원 그리고 아이들은 300원씩 일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그때가 살기 좋았단다. 고된 일과 중 유일한 즐거움은 역시 새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새참은 국수가 최고. 마침 오늘도 묵은지 송송 썰어 넣은 국수가 새참으로 나왔다. 염치 불구하고 받아 든 국수 맛이 화산마을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 일품이다.


찾아가는 길
고로면사무소에서 908번 지방도를 따라 인각사, 학소대를 거쳐 화수삼거리까지 직진한다. 화수삼거리에서 갑령 방면으로 좌회전 한 뒤, 28번 국도를 따라 700여 m를 가면 좌측으로 화산산성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7km 정도를 오르면 군위군 고로면 화북 4리, 화산마을에 닿을 수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는 화산마을에서 28번 국도를 따라 탑리까지 거슬러 나온 뒤, 청로교사거리에서 927번 지방로로 갈아타고 용대리, 가톨릭공원묘지 방면으로 진행하면 된다. 용대리 마을 입석과 용대교를 지나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나온다.  


묵을 곳
화산마을 인근에서 숙박할 만한 곳으로는 고로면 장곡리에 위치한 장곡휴양림(054-380-6317)을 추천할만하다. 참나무 천연림으로 이뤄진 장곡휴양림은 산막 8동, 산림휴양관 1동, 종합산막 1동, 산림생태체험관 1동 등 총 1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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