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NP Aug 20. 2015

여행, 다시 쓰기 -봉평 메밀꽃-

메밀꽃 흐드러진 그곳에서 달빛에 흠뻑 취하다.

메밀꽃 흐드러진 그곳에서 달빛에 흠뻑 취하다.



오후 4시. 느지막이 집을 나섰습니다. 메밀꽃을 보러 떠나는 길입니다. 목적지는 강원도 평창의 작은 마을 봉평입니다. 아시겠지만 봉평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저는 오늘 이곳에서 가산 선생이 허 생원의 눈을 통해 보았던, 그 므흣한 달빛에 원 없이 취해볼 생각입니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선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준비도 단단히 했습니다. 일기예보를 통해 월출시간을 꼼꼼히 살폈고,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를 훌쩍 넘긴 절기를 감안해 얇은 점퍼와 긴 바지도 한 벌씩 챙겼습니다.


봉평에 도착해 흥정천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흥정천변에 자리한 평창군 관광안내소 주변이 메밀꽃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관광안내소 주변으로는 이미 하얀 메밀꽃이 만발입니다. 8월 초 파종한 메밀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처럼 소담스러운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날이 제법 어두워졌지만 메밀밭 곳곳에는 아직도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여럿 눈에 띕니다. 관광객들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뒤에야 비로소 아쉬운 발걸음을 돌립니다. 경관조명으로 사용되는 강렬한 서치라이트가 불을 밝힌 건 그 즈음입니다. 화사한 경관조명을 받아 빛나는 메밀밭은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네요. 아마도 조금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림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설렘과 지루함이 함께하니까요. 하지만 이곳에서의 기다림은 지루함 보다는 설렘에 더 무게를 실어주어도 좋을 듯합니다. 솔직히 지루할 겨를이 없습니다. 원두막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니까요. 게다가 오늘처럼 달이 예쁘게 뜬 날이면 그 재미는 더욱 쏠쏠합니다. 보름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리 당당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켜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시골의 밤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든 탓입니다. 인근 식당 확성기를 통해 들리던 9시 뉴스가 끝나갈 즈음 서치라이트가 가장 먼저 그 빛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주변 식당과 인가에서 새어나오던 빛들도 차례차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잠깐 사이 자그마한 마을은 짙은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인공의 빛이 사라지고 오롯이 달빛만이 남은 건 아닙니다. 듬성등성 세워진 가로등은 여전히 감당하기 힘든 빛을 쏟아내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겠지요.



잠깐의 먹먹함이 지나고 마침내 하얀 메밀꽃이 맨 얼굴을 드러냅니다. 순수하면서도 무척 단아한 모습입니다. 너무 선명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흐릿하지도 않습니다. 욕심이 앞선 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안절부절입니다. 덕분에 하늘에 핀 꽃과 땅에 핀 꽃의 구분이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아니, 하늘에 핀 꽃과 땅에 핀 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은 표현일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빛에 물든 메밀꽃이, 별빛과 어우러진 메밀꽃이 이리 아름다운지 오늘이 있기 전까지는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봉평 메밀꽃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한 날로 말이지요.


글 사진 정철훈(여행작가)


산과 함께한 20년 심마니 인생
이원경(53)씨가 산삼과 인연을 맺은 건 20여 년 전의 일이다. 제천에서 농사를 짓던 젊은 농부 이원경 씨는 올림픽을 앞두고 돌연 심마니의 삶을 선택했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농사를 짓던 당시에도 틈만 나면 지인을 따라 산에 올랐고, 그렇게 2년 정도 산을 탄 뒤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산이 좋아, 약초가 좋아 선택한 길이었지만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 불규칙한 심마니의 수입만으론 가정을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천에서 평창으로 이사한 뒤 바로 주변 임야를 이용해 장뇌삼농사를 시작했다. 최소 10년은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뚝심으로 버틴 20년. 230000㎡으로 시작했던 장뇌삼 밭은 이제 660000㎡로 훌쩍 늘었다. 강원도에서는 손에 꼽히는 규모다. 심마니로서의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2003년에는 150년생으로 추정되는 무게 20g짜리 천종을 캔 적도 있다. 당시 시가로 5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대물이었다. 한국심마니협회 평창지부장을 맞고 있는 이원경 씨의 꿈은 우리 장뇌삼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강원도 정선에 수출용 장뇌삼을 재배하기 위해 540000여㎡의 임야를 새로 구입했다. 수출용 장뇌삼을 재배하는 전문단지로 키워나갈 생각이다. 언젠가 그의 꿈처럼 고려인삼을 능가하는 평창 장뇌삼이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찾아가는 길
효석문화마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장평까지 온 뒤, 장평 나들목에서 6번 국도를 따라 봉평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된다. 장평 나들목에서 효석문화마을까지는 6km 남짓. 차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숙박 및 맛집
봉평에서는 잠자리 걱정할 일은 없다. 펜션 전시장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곳곳에 펜션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흥정계곡 주변으로는 말 그대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펜션이다. 그중 산 속의 작은 섬이라 불리는 붓꽃섬에 자리한 펜션 붓꽃섬아트인아일랜드(033-336-1771)가 추천할만하다. 펜션 외에도 봉평면 인근으로 모텔 메밀꽃필무렵(033-336-2460), 허브모텔(033-335-1477) 등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 다시 쓰기 -군위 화산마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