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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오잉 Dec 02. 2022

동네에 스며든다는 것

5번의 적응

한 달 전,

다니던 요가원 선생님께 한의원을 추천받았다.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곳.

내가 이곳으로 들어설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던 곳.



허리가 아파 방문해보니


‘와.. 여긴 찐이다’


2대가 운영하는데,

사극 속 의관이 치료하는 것 같은(?)

그런 조선시대 느낌의 한의원이었다.


침을 맞으며 누워있으니

만족스럽다 못해 뿌듯하기까지 했다.



‘나 이 동네에 진짜 스며든 거 같아'





-

대학생이 된 뒤 총 7번의 이사를 했고

새로운 동네에 5번 적응해야 했다.


아이가 없을 땐

적응하는 일은 즐거움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낯선 길을 걷는 일은 긴장됐지만

이내 적응했고,

맛집 찾기에 실패할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은 좀 더 많은 피로와 부담감을 불러왔다.

어린이집 찾기, 소아과 찾기,

아이와 갈 만한 식당 찾기..



올 3월  

태어나 단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곳으로 이사 왔다.

아는 것도, 아는 사람도 하나 없어

어색해서 싫었던 아파트 단톡방까지 들어가 정보를 얻었다.


적응은 점차 즐거움보다 귀찮음으로 변해갔다.


그런데 그 한의원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큰길에 간판을 보고 찾아가는 병원이 아니라

뒷길 구석에 있는 병원을 알게 된 것은

묘한 뿌듯함을 줬다.




돌이켜보니

구로에 살 때도,

지나다니던 길에 있던 평범한 식당이

알고 보니 살구 밀크티 맛집이었다는 사실을

동네 토박이 친구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웃기지만,

동네 친구를 사귀어 그 친구와 살구 밀크티를 나눠 마시고 있는 그 시간에

난 이 동네에 진정 스며들었다 느꼈다.

‘동네 친구가 생겼어....!

그리고 이 밀크티 진짜 맛있다....!‘




영등포에 살 때도

편의점 지하에, 간판도 잘 안 보이는 그런 호프집을 알게 됐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던 곳인데

무려... 슈 바이 학센까지 파는 찐 혜자 맛집이었고

남편과 난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모든 메뉴를 섭렵!

사장님과 사담 나누는 단골이 됐다.

나중엔 사장님께 주방장과 싸운 하소연까지 듣는 사이가 됐을 정도..?


허름한 호프집이

알고 보니 그 동네 맛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난 비로소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다.



곱씹어보면

동네에 스며들었다는 건,


내가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는 것보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마냥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한 번쯤은 아는 이를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괜시리 긴장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


침을 맞으며 들었던 그 마음도,

좋은 한의원을 알게 됐다는 사실보다

병원을 추천 받으며 일상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갈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빨리 낫자고 말하는 한의사 선생님을 보면서


비로소 스며들었다 느꼈던 것 같다.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더 이사를 다니게 될지 모르지만

어서 진짜 토박이가 될 동네를 찾고 싶다.

여기저기 인사 나눌 이가 많은 그런 곳으로.



우리 세 가족이 완전히 스며들 곳은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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