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짧은 소설

by 여름

누렇게 색이 바랜 거실 천장 구석, 검은 몸통의 거미가 대칭으로 가느다랗게 쭉 뻗은 다리를 뽐내며 줄을 치고 있다. 내 엄지손톱보다 작은 거미에게서 혐오감을 느낀다.


온 신경이 거미에게 집중되어 있다. 왠지 거미가 살살 움직이는 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것 같다. 나는 오른손에 휴지를 만 채 거미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불쾌감을 한 층 더해주는 거미의 단단한 외피가 점점 자세하게 보인다. 나는 왼쪽 벽면에 걸린 거울을 슬쩍 바라보았다. 내 한쪽 뺨에 자리 잡은 화상 자국이 거미의 외피와 닮아 있다.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익숙한 발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현관문 비밀번호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나왔어. 엊그제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당연한 듯 인사를 건네며 신고 있던 슬리퍼를 대충 벗어던진다. 딸아이는 가방을 뒤적이며 내게 다가와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넨다. 구깃한 종이를 건네받아 똑바로 펼쳐본다. 종이 위쪽에는 학생 인적 사항이라 크게 쓰여 있다. 딸아이의 둥근 글씨체 사이로 빈 부분이 몇 곳 보인다. 종이를 훑다가 한 곳에 시선이 꽂힌다. 딸아이가 정성스레 쓴 내 이름 옆 아버지 직업란, 하얗게 텅 비어 있다.


나는 살며시 손을 올려 내 화상 자국을 매만진다. 단단하게 굳은 표면이 손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진다. 가슴 깊숙이부터 갑갑함이 몰려온다. 몇 년 전의 사고로 생긴 이 화상 자국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놨다. 볼 한쪽을 다 덮은 검붉은 화상 자국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 나는 뺨에 끔찍한 거미를 매달고 산다.


무의식적으로 거미에게 시선이 향한다. 딸아이도 내 눈동자를 따라 시선을 움직인다. 딸아이는 곧 작은 비명을 내뱉는다. 아 징그러워. 아빠 빨리 저 거미 안 잡고 뭐 하는 거야. 딸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거미는 이 혐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자신의 집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저 징그러운 거미는 당당했다. 여덟 개의 다리를 놀리며 인간의 비명은 신경 쓰지 않는다. 딸아이가 내 팔을 슬쩍 붙잡으며 거미를 잡아 달라 애원한다. 나는 거실 탁자에 놓인 휴지 몇 장을 다시 뽑아 멍하니 거미를 바라보았다. 거미는 바라만 봐도 끈적끈적한 거미줄 위를 자유롭게 활보한다. 저 협각류의 딱딱한 외피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 거미가 되는 상상을 한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과 경멸을 무시하는, 아니면 오히려 그런 것까지 즐기는.


까치발을 들어 손을 뻗는다. 손에 쥔 휴지로 거미를 감싼다. 투명한 거미줄이 길게 늘어나 이내 끊어지고는 거미와 함께 휴지에 대롱 매달려진다. 딸아이는 안심이 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간다.


휴지를 펼쳐 거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몸이 뒤집힌 거미는 여덟 개의 다리로 발버둥을 친다. 검은색의 몸통이 다리와 함께 흔들린다. 그 꼴이 혐오스러우면서도 꽤 웃기다. 어디선가 거미의 한껏 긴장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도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 녀석을 변기에 넣어 내려버릴까 하다 거실 자그마한 창문을 연다. 아직 차디찬 봄바람이 창을 통해 불어온다. 살결에 자잘한 소름이 돋는다. 손을 창 밖으로 내밀어 휴지에서 거미를 털어 버린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창밖으로 숙여보니, 거미는 곧 잘 시멘트 벽에 붙어 빠르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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