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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20. 2022

23. 그 풀이 뭔 죄냐고?

    


  “잠깐 걷다 올까?”

  남편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아픈 남편은 직장을 그만둔 뒤 쉬고 있다. 다리까지 오자로 휘어 걷는 걸 힘들어한다. 그래서 대부분 산책하러 따로 나간다. 나는 걷고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

  날씨가 간이 딱 맞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옥색 명주 치맛자락이 스치는 것 같은 보드라운 상큼함이 피부에 닿는다.

  서진로, 메타세쿼이아는 벌써 이파리 색을 벌써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나무들이 어디 아픈가 하고 깜짝 놀랐다. 저수지 쪽 나무들도 변한 걸 보고야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안심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무들을 보았어도 이제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좀돌팥을 뽑게 되면서 나무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서진로를 지나 기지 재까지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좀돌팥 줄기에 감겨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보는 대로 떼어주며 지나가느라 산책을 못 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포기하고 눈 딱 감고 지나간다.

  “쉬었다 가자.”

  저류지 쪽만큼 가자 남편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도 옆에 같이 앉았다. 그런데 주변에 좀돌팥들이 또 눈에 보였다. 완전히 감긴 건 아니지만 회양목 사이사이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일부를 덮고 있었다.

  습관처럼 뻗어 있는 줄기를 잡아당기는데 남편이 쓴소리 했다.

  “그냥 둬. 걔들도 살려고 하는 건데.”

  처음에 풀을 뽑을 때 나도 수없이 했던 질문이다. 풀들은 무슨 죄냐고, 지들도 그렇게 타고난 것을.

  나도 생각했던 그 말인데 화가 죽순처럼 불쑥 올라왔다.

  “다른 나무들을 다 죽이는데도 보고만 있으라고?”

  내가 너무 정색을 했는지 남편 표정이 굳었다.

  남편은 부지런하지만 한량 격이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만땅으로 해서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다. 아무리 일을 해도 경제적 부담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그때는 등록금 면제가 없었다.)가 다음엔 대학 등록금이. 나는 네 아이 좀돌팥에 뒤덮인 나무였다.

  그늘 속에서 돈만 벌어온 나는 결국, 평생 스테로이드제를 먹어야 하는 병에 걸렸다. 부신 호르몬이 고갈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좀돌팥과 무슨 상관인가?

  비논리인 줄 알면서도 그게 좀돌팥들을 뜯어내 주는 명분이 되었다. 나는 나무들이 숨통을 틔울 수 있게 해주는 수호천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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