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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20. 2022

22. 모기에게 한 헌혈

 

  좀돌팥을 뽑는 그것보다 힘든 것 모기를 피하는 것이다. 올해만큼 모기에 헌혈을 많이 한 해가 없었다. 나갈 때 주머니에 약을 챙겨 나가야겠다고 늘 마음먹지만,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냥 나가는 날이 태반이다. 다시 들어오기 귀찮으니 그냥 나갔다가 모기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이다.

  모기에 물리면 음식물 수거함 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비누로 씻어내면 가라앉기도 한다. 그런데 모기가 아닌 다른 것에 물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엔간한 약 가지고는 안 된다. 버무리를 바르고 연고를 바르고 서울에서 공수한 연고도 발라보고 소금물로 문대도 가라앉지 않는다.

  방법은 그냥 두는 것이다. 그러면 열흘까지는 벌겋게 번지면서 부어오른다. 상처가 번질 만큼 번진 다음에야 변화가 시작된다. 가려움도 줄어들면서 벌건 색이 점점 팥죽색으로 바래다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이 약이 올라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려주면 저절로 치유되고 회복이 된다는 것을.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덧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사춘기가 온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그랬다. 그때는 받아주고 기다리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갱년기를 겪어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저절로 열이 훅훅 올라와 땀에 젖고, 심장이 방망이질하고, 감정이 메마른가 했더니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들이 다 호르몬에 의한 증상이라는 것을 겪었다.

  인간은 호르몬에 지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생리가 끝나면서 찾아온 갱년기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살피라는 의미라면, 사춘기 아이들의 호르몬 변화는 한 발짝 성장하는 통과의례가 아닌가 싶었다. 하나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지만 어떤 아이들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문이 넓고 어떤 아이들은 문이 아주 좁은 것이다. 비좁은 문을 빠져나가야 하니 답답하고 몸이 비틀려 탈출 욕구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럴 때는 공감을 해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상책이다. 육 개월이든 일 년이든 그 문을 빠져나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층 성장한 모습이 된다. 하지만 그때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야단을 치고 억압을 하면, 건드려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탈선의 욕구까지 삐져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영광의 상처처럼 여기저기 물렸던 자리도 시간이 지나니 희미해진다. 작렬한 태양빛이 옅어지면서 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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