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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9. 2022

21. 뿌듯함

     

  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고 독재를 펼친다면 그 아래 백성들은 모두 숨을 죽이면 살아야 할 것이다. 좀돌팥을 걷어 내면서 절실하게 느낀 감정이다.

  분수대와 정자 옆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심겨 있다. 주변에는 남천과 수국이 있다. 이 장소와 두 걸음쯤 건너 가시나무와 철쭉나무는 좀돌팥이 기세를 부리는 곳이었다. 아마도 좀돌팥이 그 주변으로 씨앗을 탕탕 쏘아 댄 것이 틀림없다.

  수국과 남천에 돌돌 말린 줄기를 다 떼어냈다. 무슨 폐가가 된 것처럼 무참하게 당한 가시나무 때는 무척이나 고전했다. 가시 때문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좀돌팥 싹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사흘만 지나도 새로 올라온 싹이 벌써 가시나무 밑동을 감아 올랐다. 죽은 나무들이 끼어 있었지만, 가시가 많아 장갑을 끼고도 몇 번을 찔리거나 긁혔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좀돌팥이 제일 많은 곳은 사실, 땅이었다. 남천과 수국 아래 뱀이 기어가듯 납작하게 깔려 온 땅을 차지하며 줄기를 뻗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줄기를 잡아 뿌리를 잡아당기면 되기 때문에 뽑아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는 것이다. 뽑은 좀돌팥 잎과 줄기들은 거름이 되라고 소나무 아래 깔아 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풍경을 보았다. 좀돌팥이 사라진 자리마다 올망졸망 다채로운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햇볕과 조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감거나 매달리지도 않고 같이 어울려 자라고 있었다.

  좀돌팥을 뽑아냈을 뿐인데 이름도 모를 많은 풀들이 땅을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좀돌팥이라는 독재자가 사라진 결과였다. 내가 뽑아내지 않았더라면 햇볕도 못 받고 덩굴 아래 눌려 있었을 것이다.

  풀들에게 해방을 준 일이 무척이나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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