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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20. 2022

26. 시어머니 1일 차

       

  39살 먹은 아들이 결혼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나는 결혼을 하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아들 뜻대로 하길 원했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친구 소개로 두 해를 사귀다가 결혼 약속을 했다.

  며느리는 어쩐지 나랑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았다. 따뜻하고 편하고 속이 깊은 게 느껴졌다.

  예식이 서울에서 있어 전날 아들 집에서 자고 일찍 출발했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지인들은 큰사위가 관광차를 빌려 함께 올라오기로 했다.

  아침 일찍 미용실에 갔다.

  “아들 예식 치르려면 피부 관리를 하셔야죠.”

  내가 좀돌팥을 뽑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정색하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이 탔다. 모자 쓰고 나가는 걸 자꾸 잊어서다. 평소 마스크팩 한 번 한 적 없으니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웬걸! 전문 미용사에게 얼굴을 맡기니 거의 변장 수준이 되어 심지어 예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신부 대기실에 있는 며느리는 화사했다. 아들도 멋져 보였다.

  새로 개업을 했다는 예식장도 훌륭하고 코로나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예식장을 꽉 메웠다. 음식도 맛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수월하고 무탈하게 치러졌다. 남편과 나는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멀리서 와주신 손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상견례를 준비하면서 생각한 게 있었다. 딸들 때는 내가 예단비를 드려야 하는 입장이니 못했지만, 사돈들만 이해해 주시면 모든 격식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상견례 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예단비를 받지 않겠어요. 폐백도 안 받을 생각이에요. 그리고 음식 주고받는 것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사돈들도 동의를 해 주셨다. 아들 며느리는 커플 반지를 예식 반지로 쓰겠다고 동조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한갓지게 치른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들은, 책 읽기를 좋아했다. 시험 보는 날도 이불속에다 책을 숨겨놓고 보았다. 그래서인지 공감 온도가 높다. 책으로 간접경험을 수없이 해서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살면서 나는 아들과 부딪혀 본 일이 없었다. 며느리 하고도 그렇게 알콩달콩 살았으면 하는 바람만 있다.

  아직은 시어머니라는 말이 낯설다. 신혼여행을 간 며느리도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게 낯설겠지. 서울과 전주, 떨어져 있으니 자주 볼 일은 없겠지만 내 며느리가 되어 주어서 고맙기만 하다.

  오늘부터 난 시어머니 1일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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