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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신 Aug 01. 2021

‘로팅(盧亭, Lo Ting)’: 홍콩인의 정체성 표상

2019년 홍콩 항쟁 2년 후

이 글은 2021년 3월 8일 비평 웹진 '크리틱 칼'에 게재한 글입니다. 


서로 다른 시공에 떠오른 반인반어(半人半漁)의 이미지

도판1. 《홍콩의 화신-박물관 97: 역사·공동체·개인》전시 전경, 1997, 홍콩아트센터, 오스카 호 제공.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의 반환을 한달 앞둔 1997년 6월, 홍콩의 한 전시장에는 두 발로 걷는 물고기 형상의 생명체가 등장했다. 이집트의 석상과 같이 정면을 향한 채 한 발을 앞으로 내민 괴생명체는 금방이라도 전시장 밖으로 걸어나갈 듯한 모습이었다(도판 1). 푸른 빛이 감도는 그는 과거 홍콩에 존재했다고 전하는 ‘로팅(盧亭, Lo Ting)’으로, 실상 전시장의 존재는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조각상은 번뜩이는 피부와 커다란 눈으로 기이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조각의 배경에는 디오라마 형식으로 양안(兩岸) 구도의 고전적인 산수화풍 그림이 걸렸으며 바닥에는 모래와 자갈이 깔렸다. 하나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형식은 조악함으로 인해 충돌하며 초현실적인 시공을 형성했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익숙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조각상은 전시장의 시공을 넘어 2021년 현재 로팅을 응시하는 필자의 모니터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도판 2.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2017, 제작·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출처 다음 영화.


    한편 홍콩 반환 후 20년이 지난 2017년, 미국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의 수중 생명체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세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이 개봉했다(도판 2). 영화의 배경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 개발 경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1960년대로, 물고기 형상의 생명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생명체는 서식지였던 아마존에서 원주민의 숭배를 받았으나 실험체를 원한 이들에 의해 미국에 잡혀와 실험실 수조 속에 갇히게 된 존재다.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달린 푸른 몸을 지닌 그는 물에서 헤엄을 치며 지상에서는 이족보행을 한다.
    캐릭터 설정에 있어 감독이 홍콩의 로팅을 참조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으며, 영화 또한 홍콩의 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의 전시장에 서 있던 로팅 조각상을 보고 난 사람이라면 아마 이 캐릭터에서 기묘한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서로 닮은 모습의 존재가 전연 다른 시공 속에서 공명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큐레이터 오스카 호와 로팅 이야기


    이제 다시금 1997년의 전시로 돌아가 보자. 작가이자 큐레이터, 미술 평론가인 오스카 호(何慶基, Oscar Ho Hing Kay)는 홍콩 반환을 전후로 로팅에 관한 세 번의 전시를 기획했다.
    로팅은 중국 남부의 전설에 등장하는 반인반어(半人半漁)로, 이야기에서 로팅은 물고기의 꼬리를 지니고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인간의 언어를 지니지 못한 이들로 묘사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로팅은 지금의 란타우 섬(大嶼山, Lantau Island/Big Fish Mountain)에서 소금 제조를 업으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염전을 노린 남송 황제의 군인에게 학살당해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들은 중국 남부에서 외세의 핍박을 받으며 어업에 종사해 온 탄카(蛋家, Danka/Tanka)족의 조상으로도 여겨진다.1) 세월을 거치며 전해온 로팅의 전설에 무엇이 언제 더해졌는가는 불분명하지만, 전설에서 사실을 골라내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로팅에 관한 첫 번째 전시 《홍콩의 화신(化身)-박물관 97: 역사·공동체·개인(香港三世書-九七博物館: 歷史·社群·個人, Hong Kong Incarnated-Museum 97: History· Community·Individual)》(1997)은 200명이 넘는 작가와 관람객이 참여한 대규모의 전시였다. 전시에서 관람객은 자신의 개인사와 홍콩의 역사가 담긴 물건을 전시장으로 가져왔으며, 작가들은 사회운동가, 구두 수선공, 경비노동자 등 홍콩에서 살아온 이들의 개인사에 주목했다. 그중에서 로팅은 전시의 항목 중 하나인 ‘홍콩 선사시대 박물관(The Prehistoric Hong Kong Museum)’의 주제였다. 오스카 호를 포함하여 큐레이터, 문화 비평가, 역사가, 소설가 등으로 구성된 전시 기획팀은 진실과 허구를 조합해 역사의 얼개를 만들었으며, 작가들은 작업으로써 로팅의 역사를 창조했다.2)


도판 3. 호춘밍,〈盧亭/Lu-Ting〉, 1997, 혼합재료, 216×228cm, 작가 제공.


    1997년의 전시에는 대만의 호춘밍(侯俊明, Hou Chun ming)이 그린 로팅이 있었다(도판 3).3) 그림에서 로팅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큰 머리를 지닌 채 몸과 비교해 연약하고 통통한 팔다리를 웅크리고 있다. 로팅은 어린 몸에 주름진 얼굴로, 태어났기에 우는 것인지 슬픔에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붉은 바탕에 검고 굵은 윤곽선으로 전통적인 목판화 형식을 본떠 그려진 그는 역사서 한 페이지에 삽화로 기록된 분명한 사실이자 머나먼 과거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 전시 《홍콩 화신의 재탄생-로팅에 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香港三世書之再世書-盧亭考古新發現, Hong Kong Reincarnated-New Lo Ting Archeological Find)》은 다음 해인 1998년에 열렸다. 전시는 로팅의 문화를 관람객에게 알리기 위해 역사박물관의 교육 형식을 빌렸다. 오스카 호는 ‘홍콩의 고대사 연구 센터’와 ‘홍콩 로팅 연구 협회’를 만들어 예술가 회원을 모집했고, 작가들은 가짜 유적지와 모조 유물을 만들었다.4)
    그들이 기획한 활동 중에는 꼬리가 달린 로팅의 옷을 입어보는 체험도 마련되어 있었다.5) 여기서 옷은 로팅의 부재를 가리키는 동시에 관람객과 로팅을 잇는 체험의 도구로 기능하며 사람들이 공유하는 삶의 기반을 암시했다. 홍콩 사람들은 이를 입고 벗는 행위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논의하고 탐색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1999년에 열린 《로팅: 1197년의 대학살에 관한 새로운 발견(盧亭: 1197 大屠殺新發見, Lo Ting: New Discovery on 1197 Massacre)》은 로팅이 학살된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와 더불어 오스카 호와 시우 킹 청(Siu King Chung)의 기획팀은 전시장에서 떨어진 란타우 섬에서 현지 조사와 고고학 기행을 이끌며 참여자들에게 로팅의 유적을 소개하는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6)


    오래 전부터 홍콩은 식민지 이전 역사에서 문화가 부재한 지역으로, 영국 식민지 시기에는 코즈모폴리터즘의 도시이자 경제적 풍요를 이룩한 탈정치화된 공간으로, 중국과의 충돌을 빚어 내는 현재는 갑작스레 정치화된 전쟁터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그들의 문화가 존재했던 홍콩은 언제나 이를 둘러싼 세력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정치적인 장이었다.7)
    오스카 호는 홍콩이 독자적인 문화가 부재한 도시라는 평가를 의심하며 홍콩인의 정체성이라는 답을 찾고자 했다. 그는 박물관의 문법을 빌려 허구를 진실인 것처럼 보여주는 동시에 어색한 결합부를 내비침으로써 역사와 전시가 ‘사실’을 구축하는 방식을 가시화했고, 일상의 사물과 박물관의 문법을 현대미술관에 도입함으로써 미술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홍콩 미술계에 큐레이터의 능동적인 역할이라는 의제를 던졌으며, 그가 기획한 전시는 홍콩 반환이라는 현실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홍콩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가능케 한 역사적인 전시가 되었다.8)


    이상이 바로 오스카 호와 로팅의 전시에 관한 기존의 설명이다. 그러나 전시를 후술함에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할 로팅은 오히려 이야기의 일부로서 다루어진 게 아닐까. 이는 역사와 역사를 서술하는 이의 권위에 의문을 던졌던 오스카 호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9) 하지만 그럼에도 전시를 기획한 이들-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호명되는 오스카 호-는 가장 큰 주목을 얻었다.
    이야기 속에서 로팅은 자기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아닐지언정 로팅의 의사 표명이 부재했으리라는 가정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로팅은 진정 아무런 말을 한 적이 없는가. 그가 말을 하고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10)
    많은 이가 말했듯 어느 순간 캐릭터는 저자의 손을 떠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홍콩인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로팅 또한 홍콩의 시각문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가 되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11) 다음 장에서는 큐레이터의 손을 떠난 로팅 이미지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펴본다. 그러면 이제 전시장 밖의 로팅을 마주할 차례다.



연극에 등장한 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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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극단 ‘시어터 호라이즌(天邊外劇場, Theatre Horizon)’은 2014년부터 로팅에 대한 연극을 선보였다. 연극은 몇 년간의 상연을 거쳐 여러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필자가 관람한 연극은 2020년 한국에서 개최된 동아시아민중연극제에서 극단이 10월 28일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선보인 〈인어 루팅(盧亭, Lu-Ting the Merman)〉의 영상이다.12)
    극의 주인공 로팅은 외세의 핍박을 받은 지난한 역사에 이어 인권 탄압의 위기를 겪고 있는 홍콩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존재다. 로팅은 척박한 란타우 섬에서도 주어진 것에 자족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나 사람을 좋아하는 순박한 로팅은 빠르게 바뀌는 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침략자들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는다. 그는 앞서가는 다른 이를 따라해 보지만 본성을 바꾸는 일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성장을 꿈꾸며 가족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시도를 이어 나간다.
    연극에서 배우들은 로팅의 탈을 쓰고 벗으며 다양한 배역을 오간다. 탈을 벗은 이들은 극의 중재자로서 인간의 언어를 쓰지 못하는 로팅을 위해 극 중간에 나레이션을 한다. 전시와 달리 연극에서 로팅은 배우들과 동일시된 존재로 현전하며, 로팅의 탈은 홍콩인의 결의를 담은 의상으로써 배우들이 전달하려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페르소나로 기능한다.
    하지만 연극에서 로팅의 탈을 쓰고 벗을 수 있다는 사실은 홍콩인들이 손쉽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체성을 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어터 호라이즌이 2019년에 상연한 〈로팅: 역사여 안녕, 미래여 안녕(盧亭百年夢終章-絕望與希望, Luting: Goodbye History, Hello Future)〉의 포스터에는 먼 곳을 응시하는 배우들 사이로 로팅이 머리를 내민다. 로팅은 배우들의 얼굴 사이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희고 푸르스름한 빛으로 유령처럼 부유한다. 낙하하는 빗방울의 형상과 함께 검푸른 배경으로 녹아 들어가는 로팅의 얼굴에는 과거도 미래도 불분명해진 홍콩의 어두운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홍콩의 현실을 마주한 이들의 결연함은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연극 홍보 기사에 올라온 한 사진은 배우들이 지닌 연극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중첩되는 모습을 담는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머리 위로 로팅의 탈을 씌운다. 탈을 쓰기 위해 앉아 있는 배우는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결연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본다. 불분명하게 흐려진 포스터와 달리 사진의 검은 배경은 배우들의 의연한 표정을 뚜렷하게 부각한다. 그들은 로팅으로 표상되는 홍콩의 정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로팅의 탈을 쓰고 홍콩의 현실을 알리는 일은 운명과도 같은 일이다.13)



로팅의 시선


    앞선 전시에서 로팅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점차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갔으며, 연극의 경우 로팅은 배우들과 동일시되었으나 거울상과 같이 이상화된 자아로 존재했다. 두 사례에서 관객은 로팅을 하나의 대상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소개할 내용은 로팅의 몸을 가진 이들과 그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다. 그에 앞서 로팅과 무관하지만 로팅을 무척이나 닮은, 또 하나의 반인반어 이미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도판 4. 르네 마그리트, 〈집단발명〉, 1934, 캔버스에 유화, 73.5×97.5cm,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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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그린 〈집단발명(Collective Invention)〉(1934)은 로팅의 이미지와 비교해 살펴 볼 만하다(도판 4). 도덕주의적인 잣대로 마그리트의 그림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검은 양복을 입은 신사와 흰 살갗의 누드를 대비시킨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물고기-여인을 보는 그의 시선 또한 남성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다로부터 떠밀려 온 무력한 몸은 고전적인 누드화의 자세로 해변에 누워있다. 19세기 남성들을 위한 누드화가 여신이라는 이유로 허용되었다면, 마그리트의 인어는 현실을 벗어나 있으므로 받아들여 진다. 그림 속 물고기는 자신을 보는 관람객을 바라본다. 그러나 물고기와 시선을 마주치는 데는 먹기 위해 눈을 가리는 정도의 기분을 필요로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분절된 여성의 신체는 ‘인어가 애인이라면 상반신과 하반신 중 어디가 사람이어야 하는가’라는 인터넷상의 우스갯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얼굴이 없는 그의 몸은 물고기와 같이 언제든지 맛보고 물어뜯을 수 있는 대상이다.











도판 5. 클라라 청, 〈「로팅」장난감 이야기-생선 장수였던 외할머니에 대한 경의〉, 2016, 퍼포먼스, 작가 제공.


00한편 홍콩의 한 시장 좌판 위에 누워있는 로팅이 있다(도판 5). 홍콩에서 활동하는 클라라 청(張嘉莉, Clara Cheung)은 2016년 몽콕(旺角, Mongkok)의 한 시장에서 〈「로팅」장난감 이야기-생선 장수였던 외할머니에 대한 경의(「盧亭」玩具故事-向賣魚的外婆致敬, Lo Ting Toy Story-Salute to my grandmother who was a fish hawker)〉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00과거 작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생선을 파는 행상으로, 가우룽 반도 북쪽에 자리한 섹깁메이(石硤尾, Shek Kip Mei)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이 좌판 단속에 나섰고, 두 사람은 이를 피해 도망쳤으나 결국에는 붙잡히고 말았다. 둘 중 한 명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할머니는 가장인 할아버지 대신 자발적으로 경찰차에 올라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00작가가 만든 로팅에는 여성 노동자이자 가족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그의 할머니가 겪어야 했던 삶의 고충이 담겨있다. 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작가는 말린 물고기와 인형으로 만든 로팅을 내밀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14)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 앞에 로팅을 내미는 행위는 ‘우리의 몸을 보라’는 능동적인 발화로, 초현실적인 모습의 로팅은 불합리한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 시공을 인식하게 한다.15)


00이어 조 마든(Zoë Maden)의〈어린 로팅(Little Lo Ting, 小盧亭)〉(2018)을 살펴본다. 영국과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2017년 홍콩에서 짧은 영상을 수집해 4분 길이의 영상을 만들었으며, 이를 2018년 설치·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도판 6, 7. 조 마든, 〈어린 로팅〉, 2018, 영상 스틸컷, 작가 제공.


00영상은 텅 빈 에메랄드빛의 바닷속을 비춘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닷속의 소리와 섞여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듯하다. 바위틈을 따라 흐르는 시선은 이따금 수면 위를 비추지만, 무언가에 가로 막힌 듯 금세 다시 가라앉는다. 로팅의 모습은 바닷속에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가 좇는 것은 바로 로팅의 시선이다(도판 6, 7).
00〈어린 로팅〉에서 작가는 1인칭 시점의 카메라 워크로써 로팅이 보았을 법한 환영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컴퓨터 창을 중첩하여 매체 자체가 느껴지는 이후의 영상과는다르다. 이 글에서 소개한 작업 대부분이 대상으로서 로팅을 바라보았다면, 조 마든의 〈어린 로팅〉은 관객에게 로팅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촉구한다.


00경계를 넘나드는 로팅에는 작가가 가진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홍콩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존재하며, 영국 출신인 그의 가족 또한 3대째 홍콩에서 살아왔다. 하나 그는 영국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도판 8. 조 마든, 〈어린 로팅〉, 2018, 퍼포먼스 기록 사진, 작가 제공.


00성정체성이 고정되지 않은 로팅은 퀴어인 작가의 정체성 또한 담고 있다. 영상과 퍼포먼스에서 붉은 옷을 입은 공연자들의 움직임은 푸른 바다와 엇갈려 나타난다(도판 8). 늘어진 사슬과 비닐 뒤에서 몸을 뒤트는 이들은 유리 천장 밑에 억압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신을 겁박한 물질에 반하여 꿈틀대는 몸짓에는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관능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다. 〈어린 로팅〉을 시작으로 등장한 인어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변형 가능한 몸으로 모든 욕망이 떠오르고 가라앉는 가능성의 바다를 헤엄친다.16)


00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로팅은 역사 속에서 억압받은 여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퀴어의 모습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다변화해 가고 있다. 각기 다른 이들이 떠올린 로팅의 모습은 다양한 겹을 지닌 홍콩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등장인물이 동물, 노동자, 장애인, 노인, 흑인, 여성, 동성애자의 대변인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규정을 벗어나 경계를 흐리는 로팅은 특정 범주의 홍콩인을 넘어 제국주의와 가부장제 아래에 배제되었던 이들의 대변인으로 부상한다.



지금,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

    〈셰이프 오브 워터〉에 등장한 반인반어는 강력한 파괴력과 치유력을 지녀 괴물 혹은 신으로 불린다. 미지의 생명체에게서 가능성을 본 군인들은 그를 군사 무기로 개발하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일하는 엘라이자만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바라보고 소통하며 사랑에 빠진다. 구출에 나선 사람들은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로, 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주인공은 마침내 실험실의 수조를 빠져나와 드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하지만 동화같은 결말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영화의 시선이다. 영화는 첫머리에서 엘라이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섬세한 시선으로 그린다. 엘라이자가 무엇을 감각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를 비추는 시선은 그에게 목소리가 있는가를 묻지 않으며, 화면에는 그의 춤추는 발걸음만이 남을 뿐이다.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홍콩인의 정체성 표상에 나타난 한계를 짚어보자. 로팅의 경우, 여러 작가에 의해 자신의 캐릭터를 다변화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타 대중매체에서 말하는 홍콩인이란 특정 범주의 홍콩인을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7)

    연극 〈인어 루팅〉에서 로팅은 홍콩에서 나고 자라 광둥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시각은 로팅을 다룬 작업뿐 아니라 홍콩에 관한 여러 영상물에서도 발견되는데, 우산운동  10년 후의 미래를 그린 5개의 단편영화 옴니버스 《10년(十年, Ten Years)》(2015)을 예로 들 수 있다. 5개의 단편 중〈엑스트라(浮瓜, Extras)〉에 등장하는 인도 출신 이주민은 정부의 일을 하청하는 갱단의 인물이다. 그는 갱단에서도 말단에 자리하며, 자신의 앞가림을 못하는 가엾고도 우매한 인물로 그려진다. 국가보안법 가결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정치인을 피습해야 하는 그는 임무를 지시한 이들에게 이용당해 사살되고 만다. 그가 목숨을 빼앗기는 점은 극의 비극을 가중하지만, 성숙한 판단 없이 동조함으로써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연시키는 인물로 그가 그려진 것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또 다른 단편 〈분신자살자(自焚者, Self-immolator)〉에는 파키스탄계 여성이 등장한다. 대학생인 그는 항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민주주의의 열사로, 홍콩에 직접 기여하는 인물이다. 홍콩에서 나고 자라 광둥어가 유창한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이 홍콩인임을 알린다. 그를 등장시킴으로써 영화는 홍콩인 범주의 확장을 꾀하고, 그를 차별하는 인물과 그의 동료를 병치하며 차별이 아닌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홍콩의 언어와 문화를 체득하지 못한 대다수의 중국 본토 출신과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호명되지 못한다. 이로써 영화는 외국인을 드러내놓고 적대하지는 않지만 배제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홍콩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만이 홍콩인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18)
    이와 더불어 연극 〈인어 루팅〉에서와 같이 홍콩인을 순수한 약자로 묘사하는 것은 서술되지 않는 공백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중국에 대한 홍콩의 반발에는 중국이 국가 발전의 후발 주자로서 뒤떨어진 문화를 가졌다는 차별 인식이 존재한다. 영국 식민지 시기에 관한 이야기는 〈인어 루팅〉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홍콩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맹목적인 지지 이면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감독 조 피스카텔라(Joe Piscatella)의 영화〈우산혁명: 소년 vs. 제국(黃之鋒: 熱血靑年 vs. 超級強權, Joshua: Teenager vs. Superpower)〉(2017)은 제목에서부터 조슈아 웡(黃之鋒, Joshua Wong Chi-Fung)을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으로 상정한다. 영화의 극적인 연출은 잘 교육 받아 영어에도 능통한 ‘자유사회’를 대표하는 민주 열사들의 순수와 혁신을 구태의연한 정부와 중국에 대조시킨다.


    연구자 장정아는 홍콩에서 벌어지는 문명과 비문명 구도에 따른 차별을 인도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닌, 홍콩인 정체성 형성의 기제이자 홍콩과 중국 본토 간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그는 중국 본토 출신의 이주민들이 홍콩 역사의 많은 부분을 구성해 왔기에 홍콩인과의 구분은 임의적인 것이라 말하며 정체성에 대한 본질주의적인 관점을 경계한다. 그에 따르면 ‘홍콩인’이라는 법적 신분과 정체성, 그리고 그에 상대되는 타자로서의 중국인의 구별은 영국 식민 정부와 홍콩·중국 정부의 제한에 따라 생겨났다. 이같은 차별적인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발전한 홍콩에 불법으로 무임승차하려는 ‘중국인’의 이미지가 생겨났고, 중국에서 태어난 홍콩인 자녀의 추방과 같은 구체적인 폭력을 낳았다. 장정아는 이러한 구도가 더이상 홍콩 사람들을 결집하는 데조차 유효하지 않은 까닭을 문명의 우월성을 경제적 부흥으로 뒷받침하던 상황이 중국에 역전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19)

    로팅의 발언에 주목하려던 의도가 무색하게도 실상 이 글은 로팅의 이미지와 기록, 진술에 관한 자의적인 독해였다. 인터넷이라는 해변에 밀려온 사실/허구의 조각을 발견하는 일. 이를 모아 또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홍콩과 중국을 인식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같은 방법이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 상대를 마주하는 일은 무엇을 지향하는가의 문제이며, 어쩌면 정합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균열-파괴와 창조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역사는 언제 끝이 나는가. 연극 〈인어 루팅〉은 삶의 터전을 일구던 로팅이 바닥에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내 로팅의 탈을 벗은 이들은 우산을 들어 올린 채 관객을 응시한다. 연극이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찾는 이야기로 끝을 맺지 않은 까닭은, 인권 탄압을 받는 홍콩 사람들의 막막함을 이야기 속에서 해소하지 않은 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이야기는 이야기 속에서 끝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예술가들이 전시장과 무대를 벗어나 지금의 한국에까지 도달 가능한 영상이라는 매체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택한 이유일 것이다. 늦은 저녁, 라이브 스트리밍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몇 안 되는 소수였으나 배우들은 댓글난에 적힌 관객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화면 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인사를 건넸다. 이에 필자 또한 앞으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또 다른 주체들을 호명하고자 한다.20)




1) 오스카 호(何慶基, Oscar Ho Hing Kay)의 회고전 《정체성 그리기: 오스카 호의 예술과 전시기획(身份何在: 何慶基的策展工作及藝術, Mapping Identities: The Art and Curating of Oscar Ho)》을 위해 파라사이트(Para/Site)에서 발간한 도록 Mapping Identities: The Art and Curating of Oscar Ho, 2004, pp. 155-156.

2) 홍콩국제예술비평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rt Critics Hong Kong)에 실린 클라라 청(張嘉莉, Clara Cheung)의 글 “Reconstructing the Hong Kong cultural identity by reconnecting with history through art exhibitions and performative rituals (from the construction of the “Lo Ting” myth in 1997 to the revival of ritualistic practices in 2014),” 22 March 2016, http://www.aicahk. org/eng/reviews.asp?id=229, (2021년 3월 6일 검색).

3) 호춘밍(侯俊明, Hou Chun ming)은 우산운동이 일어난 2014년 동일한 내용의 작품을 새롭게 제작했다. 작가 홈페이지 http://www.legendhou.tw/1997luting.html, (2021년 3월 5일 검색).
4) 아시아아트아카이브(Asia Art Archive)의 하빅췐(夏碧泉, Ha Bik Chuen) 아카이브에 관한 미키 리(Mickey Lee)의 글, “on Hon Kong Reincarnated New Lo Ting Archeological Find,”Asia Art Archive, 2 June 2017, https://aaa.org.hk/en/ideas/ideas/back-to-the-future-contemporary-art-and-the-hong-kong-handover, (2021년 3월 6일 검색).
5) 관람객의 얼굴이 드러나 사진은 공유하지 않는다.
6) Mickey Lee, 위의 글, 2017.
7) Clara Cheung, 위의 글, 2016.
8) Mickey Lee, 위의 글, 2017.
9) Oscar Ho et al., Mapping Identities: The Art and Curating of Oscar Ho, (Hong Kong: Para/Site, 2004), pp. 50-51.
10) 이 글은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Can Subalterns Speak?」(1988)라는 질문과 함께 한다.
11) Clara Cheung, 위의 글, 2016.
12) 영상은 현재 전체 공유가 중단되었다.
13) 배우의 얼굴이 드러나 연극명과 포스터, 사진은 공유하지 않는다.
14) 작가와 주고 받은 이메일, (2021년 2월 21일).
15) Oscar Ho et al., 위의 책, p. 50.
16) 작가 홈페이지 https://www.zoemarden.com/#/865004006353/, (2020년 3월 6일 검색)와 작가와 주고 받은 이메일, (2021년 2월 24~25일).
17) 이 글에서 든 사례 이외에도, 15년 전의 글이지만 임춘성의 「홍콩영화에 재현된 홍콩인의 정체성과 동남아인의 타자성」, 『중국현대문학』 33 (2005): pp. 157-190을 참고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각문화에서 드러나는 타자에 대한 멸시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18) 장정아, 「타자로서의 이주민-홍콩의 중국본토 이주민」, 『비교문화연구』 8(2) (2002): pp. 37-78.

19) 장정아는 정치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 혹은 정치적 피해를 당한 이들을 순수한 존재로 상정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우산운동 초기 순수함으로 규정된 학생들이 크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오랫동안 홍콩이 가져온 정치적 행동에 대한 부담감에 있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순수와 도덕은 ‘야만’으로 여겨지는 중국과 대조되는 성격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가의 활동을 제약하는 기제로서 작용한다. 장정아,「이 폐허를 응시하라-홍콩 우산혁명과 그 이후의 갈등이 드러낸 것」, 『황해문화』(2016): pp. 55-85.


20) 2014년의 우산운동과 2019년의 홍콩 항쟁에는 SNS와 거리에서 펼쳐지는, 어떻게 보면 한국의 민중미술과도 유사한 활동이 있었다. 미술은 길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지만, 그와 더불어 타자에 대한 재현 문제도 비슷하게 드러났다. 이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한국과 홍콩의 정체성 구축과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문제를 함께 돌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홍콩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는 홍콩 크리스티에서 판매된 한국 민중미술에 관한 기사이며, 이에 더해 코로나와 홍콩 사태를 기회 삼아 홍콩 아트 바젤이 한국으로 이전될지 말지를 가늠하는 계산까지 등장했다.
    홍콩 항쟁과 한국민주화 운동의 접점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광주에서 엿보인다. 그러나 직접적인 조우보다는 대만을 경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5. 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메이투데이(Maytoday)》는 서울과 광주, 타이베이 등지에서 열렸다. 그중 대만의 큐레이터 황치엔훙(黃建宏, Huang Chien-Hung)은 타이페이에서 열린 ‘오월 공-감: 민주중적 중류(五月共感: 民主中的众流 , May Co-sensus: Demo-stream in Democracy)’에서 한국과 대만,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연결했다(웹사이트의 전시 서문 http://maytoday.org/exhibition/maytoday/과 보도자료 https://www.gwangjubiennale.org/gb/Board/10664/detail View.do 인용). 이어 현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 중인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한 쌍의 메아리(Double Echoing)》(2021. 2. 26~5. 9)는 대만 큐레이터 우다쿤이 기획했다. 전시는 식민지의 경험을 공유하는 한국과의 공명을 시도하지만, 많은 영상 수에 비해 부족한 작품 설명으로 인해 내용이 잘 전달되지는 않는다. 덧붙여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낭만화하는 것, 소비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이 전시에는 한국과 대만, 일본, 홍콩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서사를 조명하고 연결한 정연두(Jung Yeondoo)의 〈소음 사중주(Noise Quartet)〉(2019, 4채널 영상 29분 12초)가 포함되었다.
    홍콩과 직접적으로 교류한 사례는 2019년 말 큰 호응을 불러일으킨《더 스크랩(The Scrap: Happy Together)》(2019. 12. 27~28), 그리고 작가 정승(Jung Seung)이 진행한 「홍콩의 봄: 홍콩-서울 온라인 토크 이벤트(The Hong Kong Spring: Hong Kong-Seoul online talk event)」(2019. 12. 15), 2021년 온수공간에서 열린 홍콩 항쟁 포스팅 전시회 《’화이팅(加油)’에서 ‘파이팅(抗爭)’까지: 홍콩사람들이 세계에 전하고 싶은 언어들(從加油,反抗,到報仇: 香港人想對世界說的話,From ADD-OIL and Resistance to Revenge: Messages from Hongkongers to the world)》(2020. 1. 4~5) 등이다. 그중 필자가 방문한《더 스크랩》의 경우 홍콩에 대한 우선적인 지지가 정의라는 전제 하에 악화되는 홍콩의 상황에 동시대적인 화답을 보내려는 성격이 강했다.
    현재 홍콩과의 연대는 코로나 19와 보안법 통과 이후 거의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활동 대다수가 종결된 지 만 1년이 넘은 지금, 한국에서의 시도가 어떠한 유산과 한계를 남겼는가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연대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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