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수연 칼럼

by 이수연

이따금 당연한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EBS에서 방영되었던 네모바지 스펀지밥의 한 에피소드에선 주인공 스펀지밥이 매일 일하는 집게리아의 게살 버거 레시피를 잊어버린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스펀지밥은 옷을 입는 법도, 애완 달팽이에게 밥을 주는 법도, 씻고 잠드는 법도 잊어버린다. 점점 망가지며 자신을 책망하는 스펀지밥에게 집게사장은 “자전거 타기는 잊어버릴 수 없지!”라며 자전거를 주지만 스펀지밥은 자전거 타는 법 조차 잊어버려 자전거를 펄펄 끓이며 울고 말았다.


spongebob-3886666_1920.jpg 이렇게 해맑은 스펀지밥이 펑펑 울어버렸다. (사진 Pixabay)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한 적 있다. 매일같이 쓰는 프로그램의 단축키를 잊어버린 적도 있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알약 삼키는 법을 잊어버려서 약을 먹는데 물 반 리터를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잊어버렸다. 글쓰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나는 굉장한 아픔에 시달렸다. 알 수 없는 고통에 걸을 수도, 잠들 수도 없이 며칠을 앓았다. 이틀 이상 빼먹은 적 없는 일기를 무려 닷새나 빼먹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아 그래도 닷새 만에 글을 썼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단어를 모조리 틀리고, 문장을 잊고 쓰지 못했다.


‘아니야,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 걸 거야.’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빨리 글을 써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살아오는 그간 아프지 않은 날은 없었으나, 글을 쓴 뒤로 쓰지 않은 날도 없었기에 금방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은 쉬이 낫지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을 먹으면 잠만 자고, 약을 먹지 않으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약을 먹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봐도 약 기운에 취해 타자를 쳐도 엉망이었다. 그렇게 쓰지 못한 날이 길어지면서 나는 게살 버거 레시피를 잊어버린 스펀지밥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나는 반 자포자기로 지냈다. 정신과 약을 거부하거나, 일부러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술을 조절하지 않고 마시면서 기억나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당연히 몸은 더 안 좋아졌고 글을 쓰기 위해 꾸역꾸역 앉아보아도 손이 떨려 글을 쓰기 힘들었다. 쓴 글을 지우고 수정하다 결국엔 울며 모두 다 지웠다. 다 지워진 백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글쓰기가 무엇이기에, 그것을 잃은 나는 이토록 망가져가는가.


building-1030838_1920.jpg 마음속 방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철저하게 망가졌다. (사진 Pixabay)


누군가에겐 글쓰기가 생계일 것이고, 취미일 것이고, 동경일 것이고, 표현 방법일 것이고, 성장 과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나에겐 그 모든 일이 글쓰기였다. 내가 글을 쓰는 행위는 생존이고 살아있음의 몸부림이었다.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고,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곳. 마치 쓰지 않으면, 쓰지 않은 모두가 사라져 진정한 나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은 채 거짓만이 남을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나 자신, 그대로였고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기도 했다.


잊어버렸으나, 포기하진 않는다


결국, 스펀지밥은 게살 버거를 만들게 된다. 딱히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뚝, 만들어낸다. 여전히 레시피는 모르는데, 그냥 만들었지만 버거가 나와버렸다. 지금 나도 애쓰지 않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무엇을 쓰는지,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습관같이 써내고 있다. 이건 그저 ‘쓰지 못하는 사람’에서 ‘뭐라도 쓰는 사람’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나는 글 쓰는 법을 잊어버렸다. 다시 기억할 것도 없다. 글쓰기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으니, 스펀지밥처럼 망가진 버거라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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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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