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칼럼
평범한 주말 오후였다. 오랜만에 찾은 동네가 반가워 사진을 하나 찍는데 눈 앞에서 술 취한 아저씨가 나를 큰 소리로 불러댔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 잔뜩 취해서 내가 자신의 사진을 찍는 줄 알고 화를 내는 듯 보였다. 내 사진에 그 아저씨는 머리 끝도 안 나왔다. 아저씨 안 나왔다며 애써 무시하고 길을 걸어 나가는데도 술 취한 아저씨는 계속해서 소리치고 욕을 해댔다. 무시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욕만은 잊히지 않았다.
그 일이 있던 날, 저녁에는 독자와 약속한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라이브 방송을 쉬고 싶었다. 대낮에 들은 욕이 마음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기분 하나로 약속을 어길 수 없는 노릇. 나는 약속한 시간에 라이브를 켜고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방송을 마쳤다. 하나하나 대답하고 들어주는 동안 감사의 인사가 쏟아졌다.
‘작가님 덕분에 오늘 너무 행복한 하루가 됐어요. 정말 감사해요.’
‘오늘도 약속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듣기 좋은 말들이었다. 어떤 이는 기분 좋아질 말이었다. 그러나 방송을 잘 마치고도 내 기분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수많은 감사의 인사를 들어놓고도 단 하나의 욕을 넘기지 못해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심지어 그 욕을 떠올리며 내 탓까지 했다. 내가 오해 없이 말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욕을 했을까. 사진에 그 아저씨가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괜스레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날, 수없이 들은 감사인사는 그들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오늘이 행복해졌을지도 모르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좋은 말들은 절대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하나의 비난을 더 마음 깊이 두었다. 마치 그것이 더 진심이었던 것 마냥.
그때 나는 말에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좋은 말은 가볍게 떠오르고 나쁜 말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굳이 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유명한 이들은 수십, 수백의 좋은 말속에 가끔 끼어든 나쁜 말을 마음에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보면 분명히 말에 무게가 있다. 가볍게 떠오르는 말들은 너무 높게 떠올라 닿지 않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말은 걸을 때마다 발에 치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늘 하나의 나쁜 말을 품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좋은 얘길 들어도 무거운 말 하나에 걸려 언제나 넘어져야 하는 것일까. 가벼운 좋은 말들은 머리 위에 둥둥 떠서 아무리 뛰어도 손이 닿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어쩌다 하나라도 손에 닿으면 그것을 위로 삼아 일어나듯이.
막막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가벼운 좋은 말들이 내게 계속 닿지 않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악플로 유튜브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때 우연히 받은 감사인사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작가님 덕분에 치료를 시작했어요.”라는 간략한 인사였음에도.
말에는 무게가 있다. 그러나 마음에도 무게가 있다. 그 주말, 무거운 말 한마디를 놓지 못한 것은 내 마음이 너무 낮은 곳에 있어 걸려 넘어지기 좋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사 인사에 유튜브를 그만두지 않은 것은 가벼운 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말의 무게에 일어설 수 있는가, 넘어지는가 결정된다. 일어설 마음이 있었다면 그 무엇이라도 잡고 일어났을 것이다.
무게의 중심을 잡다
무거운 말을 품은 나의 마음은 계속 무거워진다. 가벼운 말은 더 높이 떠올라 잡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일어날 마음으로 가벼운 말을 마음속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떠오르는 가벼운 말을 품에 꼭 안고 놓지 않는다. 가벼운 말이 떠오르면서 나의 마음도 조금씩 가볍게 만들어준다. 마음의 무게를 줄이는 일. 그것은 무거운 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말을 마음에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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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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