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이수연 에세이

by 이수연

또래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해놓고 친한 친구 G가 이어 결혼하자 너무 신기해했다. 세상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내 친구 G는 어릴 적부터 오갈 데 없는 나를 자기 집에 데려다 밥을 먹였고, 처음으로 ‘친구와 떠난 여행’이라는 경험을 주었고 운전면허를 딴 기념으로 스키장에 가자며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선 “생명보험은 있지?”라고 묻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엔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외쳤다. “G가 임신했대!”


세상에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이 이토록 기쁜 일이구나,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마음 한편이 어쩐지 아려왔다. 나와 학창 시절을 보내고 둘이 어디든 놀러 가며 깔깔대던 내 친구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G는 이제 나의 가장 친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G와 함께 할 시간은 더욱 줄어갈 것이고 어쩌면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순간, 괜스레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질투를 해보면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G와 멀어지기엔, 나에게 G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였다.

도대체 이 감정은 뭘까 고민하는데, 마침 어린 시절을 함께한 디지몬 어드밴처 극장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제목은 ‘디지몬 어드밴처 라스트 에볼루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디지몬 어드밴처의 마지막 이야기였다. 디지몬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강력하게 남편에게 “반드시 이걸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대가 다른 남편은 “왜 이걸?”이라고 대답했지만, 결국 나와 영화를 보았고 중간에는 남편도 눈물을 찔끔 흘렸다.


(디지몬 어드밴쳐 극장판에 관한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디지몬 어드밴쳐 라스트 에볼루션 포스터, 꼭 보길 추천한다


내용은 이랬다. 디지몬과 함께 자라온 선택받은 아이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디지몬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택받은 아이들의 상징인 디지바이스에는 디지몬과 남은 시간이 표시된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억지로 디지몬을 진화시키면 이별을 앞당기게 되고, 진화를 하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더 디지몬과 함께 할 수 있지만, 미래는 없다.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살 것인가, 어른이 되어 나아갈 것인가.

디지몬 세계에 선택받은 아이들은 미래를 택한다. 적을 물리치기 위해 디지몬을 진화시키고 미래를 구해낸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평화로운 일상을 찾은 디지몬과 선택받은 아이들. 타이치(한국어판 신태일)의 디지몬인 아구몬은 타이치를 향해 말한다. “타이치, 어른이 됐구나.” 그리고 타이치에게 묻는다. “내일은 어떻게 할 거야?” 타이치는 말한다. “내일..., 모르겠어. 그래, 내일 우리....”그러나 대답은 허공을 가른다. 더 이상의 우리는 없다. 타이치의 디지몬, 아구몬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렇게 선택받은 아이들은 디지몬이라는 어린시절을 벗어나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어린 시절을 함께 해온 디지몬이 사라지는 순간, 차마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 또한 아구몬과 함께 사라지고 덜컥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이 어른이 되는 일일까 싶었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 디지몬을 좋아했고, 운동장에서 뛰놀던 우리는 어떻게, 어떻게.

G가 떠올랐다. 이제 친구 G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나 역시 나의 삶이 있다. 모든 삶을 친구와 나눌 수도 없다. 가끔 만나서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때로 돌아갈 수 없고, 어쩌면 살아가는 만큼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 각자의 삶에 깊이 자리 잡을수록 추억이 아닌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디지몬은 그런 아이들의 곁을 떠난다. '어린 시절'의 상징같은 디지몬은 이제 이별의 대상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또다른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여전히 어른은 아니지만,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여전히 나는 어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다시 G를 만났을 때 우리는 여전히 깔깔댔고, 하는 것 없이 누워만 있었던 여행이 즐거웠다 추억했고, 서로의 이야기로 한참이고 수다를 떨며 느꼈다. 디지몬이 어른이 된 아이들을 떠나갔듯이, 삶에서 서로가 멀어지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 디지몬이 떠나더라도 디지몬을 추억하는 나와 아이들처럼, 가끔이라도 이렇게 서로를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대로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디지몬 어드밴쳐 라스트 에볼루션 예고편

https://tv.naver.com/v/18484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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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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