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픔은 어디로가는 걸까

이수연 에세이

by 이수연

올 초, 퇴근한 남편이 말했다.


“아버님, 입원하셨대.”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는데 근래, 어깨가 계속 불편하게 아파와서 회사 근처 병원을 찾았더니 시술을 해야 한다며 바로 입원하라 했고, 아주 간단한 시술이라고 설명하는 의사에게 넘어가 그날 홀라당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가벼운 시술이라는 게 시술이 아니라 수술에 가까웠고(오십견이었다고) 시술을 마친 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해 진통제를 맞으며 며칠간 입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지금쯤이면 병실에 계실걸? 전화해 봐.”


이제 막 제법 어울리게 된 정장을 벗으며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자식 노릇은 하자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평소 황서방에게 보여주는 사장님포스가 아닌 우리 아빠가 되어 어린애처럼 “우리 딸~ 너무 아팠어~”라며 엄살을 부렸고 그게 알고 보니 뼈를 깎는 수술이었다니까!”라며 의사를 향한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그랬어? 아팠겠네. 지금도 아파?”

엄청 아프다니까!”


그 아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혹은 결혼한 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으셨던 건지 아버지는 얼마나 아픈지에 관해서 한참을 설명하며 수술이었다고!”를 강조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그래도 아프다고 할 정도로만 아픈가 보네,라고 넘겨짚었다. 뒤늦게 오빠에게서 아빠 입원했다며!”라고 놀라 전화가 왔지만 그냥 시술이래~”라며 가볍게 넘기기도 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닌 내가 병원에 입원했다. 솔직히 딱히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몸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병원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치료보다는 요양이었고 가족들에겐 알리지 않은 은밀한 입원생활은 편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편한 것은 이번이 약 7번째 입원이라는 것 때문이었고 낯설었던 것은 코로나로 정신과 병동이 사라져 타과 환자들과 섞여 병실을 쓰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입원했다


그리하여 내 앞에는 고관절 수술을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중년 여성이, 대각선으론 목에 종양이 생겨 잘라낸 80대의 할머니가, 그 옆에는 나와 같은 또래의 정신과 환자가(대화해본 적은 없지만 정신과 환자는 병과가 쓰여있지 않다), 다시 그녀 앞으론 넘어져 엉덩이뼈가 나간 할머니가 6인실을 함께 쓰게 되었다(참고로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대화가 아닌 의사 회진 때 들려오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다).

이 중 목에 종양이 생긴 80대 할머니는 나보다 늦게 입원하셨는데, 입원 당일에는 여든여섯의 연세에도 아주 정정한 모습을 보이셨다. 조금 느리지만 걸어서 움직이셨고 말도 잘하시고 그간 좀 외로우셨는지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나를 불러다 리모컨을 주면서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봐요라고 말을 걸며 TV권한을 넘겨주기도 했다. 회진을 온 의사가 내일 수술하시면 좀 아프실 거예요.”라고 말해도 아파도 괜찮아~ 참을 수 있어.”라며 의연한 모습까지 보여주시는, 뭐랄까, ‘아프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할머니는 오전부터 수술실로 넘어갔다. 배드를 가리는 커튼은 소리까지 막진 못하여 막 수술을 마치고 정신없는 할머니를 향해 의사는 크고 또박또박 종양을 크게 제거했으니 아프실 거예요. 아프면 진통제 버튼 누르세요.”라고 말했고 그 비슷한 말을 두어 번 더 반복하고 나서 휘리릭 자리를 떴다. 수술 이후 출혈이 계속 있었는지 간호사 셋이 매달려 가글을 시켰고 출혈이 조금 멎을 즈음까지 병실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소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수술 전까지만 해도 또렷한 정신에 말도 잘하셨는데 저녁 즈음되자 수술 후유증으로 섬망(신체질환이나 약물 등에 의해 뇌의 전반적인 기능장애가 발생하는 증후군) 증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시더니 간호사가 여기가 어디예요?”,제가 누구예요?”,올해가 몇 년도예요?”라는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몰라라거나 아예 다른 말을 하시고 혼잣말을 계속 웅얼거리시더니 저녁 즈음엔 집에 가겠다며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혈 중인 바늘을 빼버려서 배드와 커튼에 피가 스며들었다. 이를 발견한 간호사는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할머니에게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단호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보호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날 밤. 할머니의 섬망 증세는 가시지 않아 할머니는 취침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크게 혼잣말을 하셨다. 너무 아프다며 외치기도 하고 간호사가 와도 버럭 화내기 일쑤였다. 잠들어야 하는 난 단순히 시끄럽다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제 할머니가 내게 쥐어준 TV 리모컨이 생각났다.


아픔이란 무엇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그토록 괜찮다고 하던 할머니였는데, 살기 위해 치료를 받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데, 어떻게 치료를 받고 저토록 더 아파하실 수 있을까. 그냥 어깨가 불편해서 병원에 간 아버지는 왜 수술 후 그토록 아파했던 걸까. 더 나아지자고 한 일인데, 잘 살아보자고 한 일인데 왜 수술 혹은 시술을 받기 전보다 더 큰 아픔을 감수해야 했던 걸까. 이 정도면 건강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아픔의 총량이 있고 치료는 아픔의 총량을 당겨서 한 번에 지르는 그런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치료하지 않았다면, 천천히 조금씩 더 아파왔을 것이다. 마치 지금 내 충치가 점점 더 아릿하게 아파오듯이, 더 심해지면 아마도 이를 뽑는 날이 오겠지 싶을 정도로 더 아파질 것이다. 심한 충치에 이가 뽑혀가듯이 누군가는 치료받지 못하면 생명을 뽑혀갈 것이다. 아픔을 줄이기 위해 아픔을 감수한다. 결국 치료란 그런 것이다.


지금 나는 몸 어디도 아프지 않다. 입원 초에 한 혈액검사와 X-Ray 등 여러 검사는 모두 정상이 나왔다. 그렇게 약을 먹고 그렇게 술을 먹는데도 간수치는 정상이란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이 아프다. 어떤 날은 아주 쓰게 아파와서 숨을 나눠 쉬어야 할 정도다. 이 아픔은 X-Ray로도 CT로도 나오지 않는다. 혈액검사나 소변검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곳, 즉 마음이 아파올 때면 생각한다. 이것은 나아가기 위한 아픔인 걸까, 죽어가는 아픔인 걸까. 수술을 끝마치고 진통제를 달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건강해지는 그런 아픔인 걸까, 이대로 두면 모든 것을 뽑아낼 아픔인 걸까.

보이지 않는 아픔을 품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의 아픔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은 지금,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삶이 더 이어지거나 삶이 끊어져 죽어서야 그 아픔의 길이 어디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가진 이의 막막한 외로움은, 아마도 그 길을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곳엔 아픈 사람만이 있다. 그 속에서 방향을 알 수 없는 나는 외로운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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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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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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