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Jul 11. 2022

응급실이 아니라 쉼터가 필요해

정신질환 인식개선

살아보겠다는 거창한 뜻은 없어.
다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는 건 알아.


 그런 날이 있다. 견딜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이는 날. 평소와 똑같이 일어나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은 계속 이상한 생각을 한다. 누군가 생각을 심어놓은 것 마냥 자신을 해칠 생각만이 든다. 머릿속에 꽉 박혀 빠지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으면 이 생각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자살 충동이다.


충동
1. 명사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
2. 명사 어떤 일을 하도록 남을 부추기거나 심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음.
3. 명사 심리 반성 없이 행위를 하는 경향. 원시적 반응, 폭발 반응, 동기 없는 행위 따위에서 볼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충동'임을 아는 것이다.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것도, 칼로 내 손목을 긋고 싶다는 것도, 어딘가 높은 곳에 올라 떨어지고 싶다는 것도 모두 순간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지나면 충동은 가라앉게 되어 있다. 비록 다시 찾아올지라도, 이것은 순간이다.


이 충동을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은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거는 일이다. 휴대폰만 있다면 1393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면 된다. 이 쉬운 일을 하는데 심장은 미친 듯이 뛴다. 이 정도로 전화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너무 나약한 것은 아닌가? 조금 더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번호를 다 눌러놓고도 전화 연결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한다.

 두 번째는 응급실로 향하는 것이다. 이 순간이 찾아올 것을 아는 나는 주치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주치의는 무심하게 말했다.


 "응급실로 오세요."

"행동하고 가나요? 그냥 가도 되나요?"

 "행동하기 전에 오셔야죠."


 그렇다. 행동하기 전에 응급실로 가야 한다. 물론 대부분 충동은 늦은 시간에 찾아오기에 병원에 가도 주치의가 있진 않을 것이다. 당직의가 있을 테고, 당직의가 없다면 응급의학과 의사가 있을 것이다. 개인병원이라면 응급실조차 없을 것이다. 정신과 전문 응급실은 거의 없고 사지가 멀쩡한 채 응급실을 찾아가는 것도 어쩐지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오셨나요?"


 혹시 이렇게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 "죽고 싶어서요."라고 말해야 하나. "의사가 찾아와도 된댔는데..."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진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피 흘리고 아픔에 소리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며 응급실을 찾아가는 내 모습은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의사는 행동하기 전에 오라고 했지만, 어디 하나라도 망가진 채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향하는 모습만 떠오를 뿐이다.


응급실이 아닌, 쉼터가 필요해


 우연히 기사를 보았다.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쉼터'에 관한 얘기였다. 기존 정신질환자는 응급 상황에서 응급실을 찾아가게 되지만, 대부분 '코끼리 주사'라는 안정제를 맞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처치를 받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나처럼 응급실에 찾아가는 것조차 힘들어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자를 위해 '쉼터'가 운영된다는 것이다.

 쉼터에선 자살, 혹은 자해 충동이 있는 사람이 들러 사람들과 대화하고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다고 한다. 위기 쉼터라고도 하는데 충동이 지나갈 때까지 안전한 상황에서 머물다 갈 수 있는 것이다. 쉼터는 지역사회에서 운영이 되며 많은 정신질환자가 쉼터를 통해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정신과로 응급실을 찾는 것 또한 일반적이지 않고 또 그렇기에 위기 쉼터 또한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접한 기사에는 위기 쉼터가 우리나라에도 시범 운행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있었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는 13일 서울 송파구 센터에서 당사자 위기 쉼터(회복 마을) 개소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는 이 쉼터는 시범사업으로 올해 12월까지 한시 운영된다. 

 개소식에는 장애인단체와 정신장애인단체, 보건복지부 관계자, 장애인재활시설협회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위기 쉼터가 들어서는 장소는 송파센터가 있는 건물 4층이다. 센터는 건물 2층은 기존 용도인 사무실로 운영하고 대신 4층을 쉼터로 조성했다. 30여 평의 공간에는 소파와 침대가 마련돼 있지만 거실과 침실을 나누는 작업을 거쳐 조만간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쉼터는 야간 담당자가 한 명이다. 예산의 한계 때문에 센터는 우선 한 명을 고용하고 향후 국가 예산이 더 반영되면 야간 담당자 수를 늘릴 계획이다. 비정 신장 애인인 야간 담당자는 일주일에 4일을,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한다. 

 이후 낮 시간대에는 2층의 센터 동료 지원 활동가들이 4층 쉼터를 방문해 정신응급으로 쉬고 있는 당사자를 만나 경험을 공유하고 정서적 안정을 도울 예정이다. 야간 인력이 일주일에 나흘간 일을 할 경우 나머지 사흘은 센터 직원들이 교대로 야간을 담당할 계획이다. 

출처 : e마인드 포스트(http://www.mindpost.or.kr)


 시범운행이기도 하고 야간 담당자 역시 한 명에 불과하지만, 위기 쉼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는 소식 자체가 반갑기도 했다. 아직까지 복지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 역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위기 쉼터는 큰 발전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게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 기사를 보며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들이 모이면 부정적 효과가 나올 거라 짐작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순간은 환자들끼리 모여 이야기할 때였다. 누군가 이끌지도 않는데 마치 자조모임처럼 서로 아픔을 얘기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위기 쉼터 역시 굳이 입원이 아니더라도 그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뿐이야


 내가 충동을 이해하는 방법은 '뇌 기능의 문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강렬한 충동을 이해하기 위해 부던 노력 해보았지만, '뇌 기능의 문제'가 가장 쉬운 이해 방법이었다.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받아들였다. 나아지는 때가 있듯, 나빠지는 때가 있다. 충동이 없을 때가 있고 충동이 있을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충동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다시 일상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살아야겠다는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다. 오로지 하루에 집중한다. 버틸 수 없다면 실컷 잠에 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위로한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잠에 들면 내일은 찾아온다. 지금 내가 충동을 견디는 것은 그 사실이다. 그러나 이 순간 사람이 있다면, 찾아갈 수 있고 도움받을 수 있는 마음의 쉼터가 있다면 조금 더 견딜만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고작 그 정도의 바람이면서, 자그마치 그만큼의 바람이다.




각종 기고 및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번개탄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소울하우스) 저자


Instagram @suyeon_lee0427

Facebook @leesuyeon04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