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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Aug 01. 2022

체중계를 멀리하려 합니다

프로아나가 되고 싶지 않아

"수연아 체중 좀 그만 재면 안돼?"

 

 어느 날 등 뒤로 남편의 말이 들려왔다. 나에게 내려진 많은 병명 중 사람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병의 증상을 남편은 느끼는 듯했다. 식이장애와 강박적 성향. 이 둘이 절묘하게 만나 나타나는 행동은 '몸무게를 재는 일'이었다. 그냥 재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수십 번은 쟀다. 일어나서 다섯 번은 재고(어차피 똑같은데 왜 자꾸 재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물 한 모금만 마셔도 체중을 다시 쟀다. 0.1g만이라도 더 빠졌으면 하는 마음에 재고 또 재고, 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몸무게를 재다 보니 남편도 심각하게 느낀 듯했다.

 몸무게를 재면서 한 가지 더 강박이 생겼다. 바로 '먹을 수 있는 몸무게'와 '먹을 수 없는 몸무게'를 정해놓고 일정 몸무게 밑이면 식사를 하고 일정 몸무게 이상이면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온 뒤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보고 생각한 체중보다 더 나오면 이런 말을 했다.


"오늘은 안 먹어. 먹을 수 없는 몸무게야."


 음식을 먹을 때에도 웬만하면 몇 g인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먹어야 할 땐 조금이라도 g수가 적은 음식을 택했다. 덕분에 대부분 편의점 음식이 몇 g인지 외울 정도였다. 삼각김밥 113g, 햇반 210g, 내가 좋아하는 무뼈 닭발 153g. 이런 식으로. 

 식사는 한 끼니에 200g 내외로 지정해놓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한 끼를 먹는다면 g 수를 다 확인하고 200g이 넘지 않게 구매한 뒤 딱 그 양만 먹는 것이다. g 수에 맞춰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배부르지 않을 때까지 먹고, 체중계가 있다면 몸무게를 잰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음식을 먹고 생각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억지로 구토를 한다. '폭식' 없는 '폭식증'이다.


폭식 없는 폭식증

 '폭식' 없는 폭식증이라는 말이 낯설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폭식증의 정확한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


폭식증_단시간 내에(약 2시간 이내) 일반인들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명백히 많은 양을 먹고, 음식을 먹는 동안 음식 섭취에 대해 통제력을 잃는다. 또한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음식물을 토해내거나 설사약, 이뇨제를 남용하거나, 과도한 운동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체중과 체형에 대하여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폭식증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폭식증 [bulimia nervosa]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자신의 체중과 체형에 대하여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상태'와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음식물을 토해내거나'라는 부분이다. 물론 단시간 내에 일반인이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명백히 많은 양을 먹으면 '폭식'이다. 그러나 '폭식'이 '폭식증'이라는 질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구토, 이뇨제 남용, 과도한 운동을 하거나 체중과 체형에 집착하는 증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일반인들이 먹는 양보다 명백히 많은 양을 먹지 못하지만, 폭식증으로(혹은 식이장애로) 분류된다.

 나의 증상에 관해 주치의는 깔끔히 '식이장애'라고 지칭한다. 폭식증이라고 하기엔 '폭식'이 없고, '거식증'이라고 하기엔 음식을 섭취한다. 다만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체중에 관한 집착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g 수를 재어가며 음식을 먹고, 수십 번씩 체중계에 오르내리며, 항상 더 마르길 바란다. 3kg만 빠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진짜 3kg이 빠지면 거기서 더 3kg이 빠지길 바라는 것이 나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주변은 "너 '프로아나(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나(anorexia)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조어)'냐?"라고 물어오기도 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래서 프로아나냐 물어오면 '아니요'라고 말하고 싶다. 거식증을 찬성한다의 의미의 프로아나는 거식증을 겪은 내겐 너무나 괴로운 물음이다. 거식증을 겪다 겨우 조금 벗어난 게 폭식증으로 이어졌고 폭식증에서 토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적당량'만 음식을 먹는 것이었으며, '적당량'을 먹기 위해 g 수를 체크해가며 식사를 해온 것이지 거식증이 되기 위해 이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다.


 이제 한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모두가 내게 하는 질문이다.


"수연 씨는 살이 많이 쪄 본 경험이 있나요?"
"왜 그러는 거예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나의 행동이 충돌한다. 나는 한 번도 '비만'이라는 수치까지 살이 쪄본 적 없다. 주변 얘기로는 어느 정도 살이 올랐구나 싶은 때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앞자리가 5가 되어본 적이 없다. 늘 몸무게는 40킬로대 초중반. 그럼에도 매번 식사조절을 하고 먹으면 토하고 몸무게를 잰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많은 고민을 했고 또 많이 상담을 받았다. 그 뿌리는 거식증일 때 찾아낼 수 있었다.


 거식증. 체중은 이미 20% 가까이 빠져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고 여전히 식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되면 곤혹스러웠다. 먹지 않아도 자리에 앉아야 했고 식판을 마주 봐야 했으며 얼마나 식사했는지 식사량을 검사했다. 계속되는 식사 거부에 링거를 달아보기도 했다. 덕분에 죽진 않았으나, 음식을 입에 넣는 것은 끔찍했다. 스스로 말랐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더 빠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음식이 끔찍했다.


 "왜 음식이 그렇게 싫어요?"


 그 물음을 한참이고 생각했다. 일단은 역겹다는 느낌이 먼저였다. 냄새나 삼킬 때의 감각이 역겹다. 몸에서 거부하는 느낌인데 소화기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정신적 문제라 했다. 그렇다면 왜 역겨울까. 식판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왜 음식이 싫을까.


 "살려고 먹는 거잖아요. 나는 살기 싫은데, 살려고 먹는 제 자신이 끔찍해요."


 그 물음의 답은 몇 년이 걸렸다. 그 사이 거식증과 폭식증은 번갈아 왔다. 자연스럽게 몸이 나아지면서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 적도 있었고 정신과 약으로 식욕을 올리기도 했다. 몸무게는 오락가락했고 속은 엉망이 됐다. 그 와중에 상담치료는 효과가 있었는지 '먹는 게 왜 싫은가'에 관한 답은 찾아냈다. '살기 싫어서'. 죽고 싶은데 먹는다는 행위는 살겠다는 의지 같아서 싫었던 거였다. 살이 찌는 것도 살아있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끔찍한 건 음식이 아니라 나였다. 나를 싫어했던 거다.


 "그건 알아냈네요."

 "이제 어떡해야 하죠?"

 "자신을 받아들이셔야죠."


 알아냈으니, 받아들이라고 했다. 말이 쉽지, 가장 어려운 일을 턱 하니 말하니 허무했다. 그래, 받아들이면 되지. 내가 싫어하지 않는 내 모습이 되면 되지. 살고 싶은 것까진 아니더라도, 먹는 게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는 날 받아들여보면 되지. 그렇게 살아보려고 했다. 체중계에 수십 번씩 오르내리고 g 수를 체크해가면서.


체중계를 멀리하려 합니다

 체중에 관한 강박은 단순히 '살찐 내가 싫다'는 게 아니다.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과 '식욕', 그리고 '자기애'가 섞인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이 강박은 먹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나에서 먹는 것을 허용하는 나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여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여전히 '식이장애'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된다. 나 역시 이 강박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내가 수십 번씩 체중계에 오르고 g 수를 계산하며 음식을 먹을 거란 의미는 아니다. 내가 왜 체중 증가를 싫어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생각의 뿌리를 다시 고른다. 나는 정상 체중이고,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오늘도 나는 체중계에 올랐다. 대신 단 한번. 하루에 한 번만 체중을 재려 한다. 토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배부르지 않게 식사를 하고 간헐적 단식을 지킨다. 정해진 시간 동안 식사를 하고 정해진 시간 단식을 하며 체중을 유지한다. 적절한 식사와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이 강박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언젠가 나도 '마음 편히'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까.




각종 기고 및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다산북스)

*<슬픔은 병일지도 몰라>(반니) 저자

* 독립출판 소설 <자화상>(단편소설집 RED) 제작 및 저자

*<번개탄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소울 하우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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